[달구벌아침] 당신의 창엔 어떤 풍경이 걸려 있나요?
[달구벌아침] 당신의 창엔 어떤 풍경이 걸려 있나요?
  • 승인 2023.10.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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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풍경이 울린다는 것은 문이든 마음이든 누군가 열고 안으로 들고나는 기척 아닐까.

중앙로 한 복판 카페에 놓인 긴 의자에 나란히 벽을 등지고 앉아 있다. 창밖, 오가는 사람들을 멍때리듯 마음 내려놓고 바라본다.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장롱이라는 틀 속에 서로 제각각이 끼워진 서랍들처럼 그녀와 나는 마음속, 또 다른 공간과 시간을 견디며 각자 다른 온도와 눈높이 그리고 생각을 정리 중이었다.

2.28 공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 맨 꼭대기 층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들 노년처럼 곧, 가을이겠군.”

가을은 예고 없이 사람이나 일 그리고 어떤 풍경들이 불쑥불쑥 생각나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어 꺼내본 말이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무슨 뜬금없는 말을 하는가 싶었든지 마시고 있던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입 안 가득 머금은 채 잠시 나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다시 생각에 잠긴다.

혼신을 힘을 다해 여름 끝자락을 붙들어 잡고 있는 매미울음처럼 막바지 무더위를 달래기 위해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창 안에서 앉아 바라본 창밖, 공원의 풍경은 이미 가을이다.

한껏 짙어진 진초록의 나뭇잎들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쓸쓸해 보였으며 휴대전화 하나씩 각자의 손에 쥐고 떨어져 걷는 연인들의 거리가 낯설어 보였다. 흘러내릴 듯 끊어질 듯 가녀린 어깨끈 사이사이로 드러난 뽀얀 두 팔은 서늘해 보였으며 또한 허벅지가 훤히 다 드러나 있는 짧은 청바지는 시린 바람을 막아줄 수 없을 만큼 아찔해 보였다.

내내 침묵하고 있던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되물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 같아 그자. 넌 어떻게 생각해?”

가을 햇살을 가리기 위해 챙겨 나왔다는 소매 긴 카디건을 가방 속에서 꺼내 등을 감싸 안으며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따가운 볕살을 몸으로 직접 견디고 있는 창밖에서 어찌 알까. 겨울을 좋아하며 O형인 너하고 여름을 좋아하고 A형인 나하고의 사이처럼 창 안의 온도쯤이야 짐작만 할 뿐일 테지.”

한곳에 계속 머물러 있던 눈길을 돌려 대답 대신 멈춰있던 책장을 넘겼다.

“자기를 통해서 모든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 자기는 거의 부재에 가깝다. 부재를 통해 모든 있는 것들을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이 넓이 속에 들어오지 않는 거란 없다/ (...) / 눈들이 자기를 통해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 외로워하는 이건 한없이 투명하고 넓다, 성자를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정현종 시인의 ‘창’이라는 시가 펼쳐진다.

그녀와 내가 바라본 오늘, 우리의 창은 문이다. 열정을 다해 열고 나감으로써 ‘너와 나’, ‘창 안과 밖’, ‘온도와 온도 사이’ 서로의 세상을 보여주는 문이었다.

여름과 겨울 사이, 나와 그녀 사이, 생각이나 행동이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침착한 냉정과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인 열정 사이를 떠 올리며 우린 다시 창밖을 내려다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중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둘이 함께 피켓을 든 채 공원 가장자리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도화지 크기의 사각 피켓 안에는 알록달록하게 쓰인 글자들이 삐뚤빼뚤 굴곡진 걸음으로 다급한 듯 묵언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헌혈합니다. A형, O형 급하게 찾습니다.”

투명한 창처럼 세상이라는 틀에 갇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듯 다 안다고 여겼던 일들이 가끔은 높이도 깊이도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는 담벼락처럼 가로막고 서 있는 문일 때가 있다. 그럴 땐 내 입장보다는 상대의 입장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마음을 열고 들어가 봄으로써 인생의 교집합이 더욱더 커지는 것은 아닐까.

결국 우주만큼 커다란 원처럼 뾰족한 마음도 둥그러지지 않을까.

창밖을 보려는 열정의 의지가 없으면 창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나의 눈은, 내 마음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다. 나는 무엇을 비추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지금 나의 창엔 또한 당신의 창엔 이 가을, 어떤 풍경이 걸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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