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나는 세상 알고도 살았노라*
[좋은 시를 찾아서] 나는 세상 알고도 살았노라*
  • 승인 2023.10.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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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운 시인

진 땅 마른 땅 다 밟아 보고 첫눈에 선인을 알아보는 여자

술잔에 달라붙는 하루살이 같은 사내들

눈 하나 깜짝 않고

난장에 나온 오이인 줄 덜퍽 손목 잡는다면

거침없이 닭 모가지 비틀듯 하는

고락을 아는 입술에 침 바르며

발소리 뜸할 때마다 책장을 넘긴다

비워지는 발자국만큼 채워지는 책장

명절 장에 나가듯 참여한 동네 백일장

나는 세상 알고도 살았노라

속 내 털어놓으니, 눈 밝은 이를 만나

어엿한 시인 목록에 올랐다

어머니 말씀대로 밥도 돈도 나오지 않는 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함박웃음으로

엄마가 시인이라니, 벙글어진다

부끄럽다 생각한 적 없는 주점 간판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나는 세상 알고도 살았노라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변용

◇김효운= 월간문학으로 등단. 충남시인협회 신인상, 웅진문학상 수상. 천안문화재단, 충남문화재단,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시집 ‘목련틀니’, ‘붉은 밤’ 발간. 한국문인협회, 천안문인협회, 충남시인협회 회원. 바람시문학회 회원, 웹진 시산맥 운영위원.

<해설> 세상을 알고도 사는 사람이 있고, 세상을 모르고도 사는 사람이 있다. 어떤 환경 어떤 팔자를 타고나는가에 따라 우리네 인생은 천차만별 아니던가? 진 땅 마른 땅 다 밟아 본 한 여자의 일생을 시 안에 그려 넣고 있다. 술집! “술잔에 달라붙는 하루살이 같은 사내들에게 눈 깜짝하지 않고”라는 솔직 담백한 진술과 함께 어엿한 시인 목록에 오른 시인은 남이 아닌 하나일 진데, 아이의 웃음을 통해 왠지 씁쓸한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모르고 산 것이 아닌 알고 헤쳐 나가는 삶이 바로 진정성을 획득하는 길이며 참 시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김소월 시인의 시 한 구절인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뒤집어 그만의 주점 간판으로 걸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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