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동전의 얼굴
[좋은 시를 찾아서] 동전의 얼굴
  • 승인 2023.11.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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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프로필 사진
이은우 시인

핑그르르, 동공이 마음을 흔들 때/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공중으로 동전 하나 튕기는 일

다른 세계로 들어가려는 몸짓 같은 것

바닥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고/ 회전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표정이 생겨나고

갈채 속 발레리나/ 위태로운 발끝으로 몰려드는 그림자

돌고 도는 춤이 멈추는 순간

덥석 집어 들거나/ 끝내 손을 열지 않거나/ 누군가는 내 꿈을 엿보려 하지

쓰러진 발목을 추스를 때까지/ 웃음을 지그시 밟고 선/ 녹슨 시간의 냄새

오래 어두웠던 것들은 스스로가 빛이야/ 부풀어 오는 그림자 위로/ 불쑥 안겨드는 목소리

등 뒤로 쏟아지는 달빛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은은히 녹아들고 싶은 밤

손바닥 아래 동전을 돌려세우면/ 동그라미 안으로 모여드는 중심

빛이다가 어둠이다가

핑그르르/ 지구본을 돌리는 밤

◇이은우= 202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재학. 다락헌 상주작가.

<해설> 좋은 시를 지면상 너무 길어서/ 으로 행을 구분하고 보니, 시인에게 미안하다. 이 시는 계간<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작인 것 같은데, 이미 심사위원의 호평이 있었던 시이다. 시가 길면서도 호흡을 놓치지 않고 동적 요소를 끝까지 끌고 가며 이미지를 살려낸 것은, 시인의 탁월한 능력이다. 동전을 돌리는 행위에서 발레리나, 꿈, 녹슨 시간의 냄새, 달, 얼굴, 동그라미, 지구본으로 연상을 번져가는 시인의 심리는 “핑그르르”라는 동작의 동경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무의식적 행위의 다름 아니다. 돌다가 멈춰서는 그 시점이 앞이든 뒤이든, 이만큼 좋은 시로 독자들에 목마름을 해소해 줄 능력은 확인한 셈이니, 꾸준히 더 좋은 시를 쓰시기를.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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