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바람 부는 날
[좋은 시를 찾아서] 바람 부는 날
  • 승인 2023.11.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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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사진
박은주 시인

끝나야 하는데 끝나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일까

나는 창문을 닫지 못한다

어디론가 통하는 길이

꼭 창가로 나 있는 것 같고

무언가 꼭 창가로 날아올 것만 같아

무얼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에

괜히 가슴을 쓰다듬으며

창문을 닫지 못한다

공허한 허공이 가랑가랑 흔들리고

뿌리만 남기고 잎은 떠나보낸 대머리 잡초가

이파리도 없이 흔들리듯

마음을 잡지도 못한 채로

창문을 닫지도 못한 채로

자꾸 가슴을 쓰다듬는데

바람 부는 날은

그럴 일이 아니었다

창문을 열어두는 게 아니었다

◇박은주=2012년 ‘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나는 누구의 바깥에 서 있는 걸까’. 대구시인협회 회원.

<해설> 바람은 보이는 게 아니다. 바람은 자신이 일으키는 것이다. 시인은 창을 앞에 두고 바람은 감지하고 있다. 창을 열었다가 닫는 행위를 통해 어쩌면 자신 내면의 바람(바램, 기대)과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에서 가장 놀라운 상상력은 “뿌리만 남기고 잎은 떠나보낸 대머리 잡초가 / 이파리도 없이 흔들리듯”에서 대머리 잡초? 궁금하기 그지없다. 본시 대머리였는지, 밑동이 바짝 깎여서 그리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파리도 없이 흔들린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 불가의 화두로 읽힌다. 아무튼 창은 열라고 달아둔 것인지, 닫으려고 달아 둔 것인지. 창은 신체의 어느 한 부위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창은 시인만 아는, 바람을 맞이하는 그런 창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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