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소비자는 속이는 저울에 분노한다
[박명호 경영칼럼] 소비자는 속이는 저울에 분노한다
  • 승인 2023.12.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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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물가 오름세가 여전한 가운데 정책당국이 연말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는 제3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개최하고 최근 물가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면서 물가 안정을 위해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출범하는 등 유통구조를 개선하기로 했다. 더불어서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방안의 마련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이 우회적 가격 인상 수단으로 등장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피파 맘그렌이 고안한 이 용어는 ’줄어들다‘라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전반적·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패키지 다운사이징’으로도 불린다.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서 가격 인상과 같은 효과를 누리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소비자를 속이는 상술이며, 그 결과는 숨겨진 인플레이션이다. 이러한 속임수는 가뜩이나 고물가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팍팍한 살림에 피곤함과 실망감을 부채질하면서 허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식품업계에서는 이미 만연한 현상으로 특히 소비 여력이 부족한 청년들과 가격에 민감한 서민들에게 부정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선량한 소비자를 속이는 비윤리적 상행위로 지탄받고, 몰래 꼼수를 쓴 기업의 이미지는 나빠진다. 소비자단체는 물론이고 정부가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경제체제에 역행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가가 가격을 바꾸기 위해 인위적으로 힘을 사용해 통제하는 것은 경제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가격결정은 경영 그 자체며, 가격결정에 실패하면 기업경영은 파탄이 난다. 따라서 업계가 스스로 자제해야 하고 자율 협약을 마련해서 잘못된 관행을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마케팅이란 겉치레만 그럴듯하게 해서 물건을 파는 수단이 아니다. 고객의 눈을 속여서 이익을 얻는 것은 장사가 아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의 추구에 있지만 고객과의 관계를 희생해 가며 얻는 이익은 분명 나쁜 이익이며 그 이익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인앤컴퍼니의 프레드 라이켈트 대표는 좋은 이익을 내는 기업만이 성장 동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런 기업의 고객들은 친구나 동료들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추천하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찐팬이 많은 기업만 성장한다는 것이다. 고객을 찐팬으로 만드는 비결은 진심과 좋은 관계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도 “돈을 버는 비결은 오직 사회에 대한 책임과 명성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케팅 혁신은 기업이 고객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창고형 할인매장 체인인 월마트를 개척한 샘 월튼은 고객을 제일로 놓는 서비스 정신을 사업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는 “소매업에 뛰어든 이래 나는 줄곧 하나의 기본원칙을 고수해 왔다. 즉, 소매업에 있어서 성공의 열쇠는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헬스케어 회사인 존슨앤존슨(J&J)의 강령에서도 “고객이 최고며, 고용자는 둘째다. 그래야 투자자들에게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라고 선언한다. 이렇듯 고객을 정점으로 하는 기업가치가 기업성공의 핵심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단편적인 지식이 방대하게 연결되는 사회에서 해당 정보의 가치를 빠르게 알려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가격 정보의 정당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은 그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50여 년 이전만 해도 농·수산물은 물론이고 무게 단위의 상품 거래에는 대부분 저울을 사용했다. 그래서 소비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저울의 정직성이었다. 교묘히 속이는 저울에는 단연히 분노했다. 자기 꾀에 빠져 고객을 속여서 나쁜 이익을 추구하는 저울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렀다. 성경의 잠언에서도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했다. 이처럼 속이는 저울은 사람은 물론이고 신에게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 법원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 손에는 천칭, 즉 금 저울이 들려있다. 천칭의 한쪽에 법규를,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죄를 올려놓고 양쪽이 수평을 이루도록 판결하는 것이 사법부의 임무라는 뜻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며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장사에서도 공정성이 지켜져야 한다. 꼼수의 유혹은 어떤 경우라도 결연히 물리쳐야 한다. 잘못된 속임수를 용인하거나 옹호하면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고, 우리 모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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