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죽도에 끌리다
협죽도에 끌리다
  • 여인호
  • 승인 2023.12.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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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

성석제 소설 ‘협죽도 그늘 아래’의 첫 구절이다. 소설 속 여자는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 50년간 학병 간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가 여인이 기다리는 곳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으로 삼은 것은 가시리가 고려가요의 이별 노래이기도 하고 제주도 표선면의 동네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더해주는 가시리(加時里)라는 동네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신랑을 기다린 50년은 아주 느리고 긴 시간이었다. 긴 시간 동안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은 이해가 되나 제주도의 여러 가로수 중에 왜 협죽도 그늘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협죽도가 제주도의 가로수 중의 하나이기는 하나 제주도에는 협죽도 이외에 먼나무, 돈나무, 담팔수, 종려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육지에서 볼 수 없는 난대성 수목들이 많다.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제주만의 독특한 민속신앙인 신당을 만나게 된다. 그 앞에는 신목이 수호신처럼 서있다. 신목의 대부분이 팽나무이고 팽나무가 만든 그늘은 신성함뿐만 아니라 서늘함까지 느끼게 한다.

제주 노거수에도 팽나무가 많다. 표선면 가시리 식당 앞 두 갈래 길에 팽나무가 있었고 인근 성읍에는 천년을 산 팽나무와 팽나무 군락이 있다. 제주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살아온 팽나무를 폭낭이라 부르며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제주도 4·3의 아픔을 ‘폭낭의 기억’으로 소설화하거나 가시리 43길 로고를 팽나무로 만든 것은 팽나무가 제주도의 상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시리 가는 길목, 팽나무 그늘 아래 한 여자가 앉아 있다”라고 표현하여 제주의 이미지를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왜 그늘도 제대로 못 만드는 협죽도 그늘을 배경으로 선택했을까?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시집을 왔던 여주인공을 붉은 협죽도꽃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협죽도가 독성이 있어 가까이할 수 없는 점도 염두에 둔 것 같다.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갔던 학생이 나무젓가락이 없어 협죽도 가지를 꺾어서 김밥을 먹었다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협죽도 달인 물을 지인에게 마시게 해서 보험금을 타내는 사건이 있었다.

누구나 와서 쉬는 팽나무 그늘보다는 치명적인 독이 있어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곳, 그곳이 협죽도 그늘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늘에 홀로 기다리는 여인은 더 가련하다. 소설 속에는 “긴 기다림에도 여인은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다. 곱게 늙었다. 여자의 관자놀이에는 가늘고 새파란 정맥이 드러나 있다.” 정도의 표현일 뿐, 가련함이 묻어나는 여인의 얼굴 묘사가 없다. 나머지 얼굴 묘사는 독자의 몫일 수도 있다. 붉은 협죽도 아래 신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얼굴은 천경자의 미인도를 생각나게 한다.

천경자는 “그림 속의 여자가 꽃을 머리에 얹은 것은 한(恨)이 많아서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작품 속 한 맺힌 여인의 눈동자는 생과 사를 초월한 눈빛 같다. 눈가에 번지는 음영은 슬픔이 배어나는 듯한 묘한 느낌이다. 슬픈 눈빛과 달리 머리에는 협죽도과의 플루메리아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있다. 천경자의 다른 그림처럼 머리 위에 뱀을 얹었던 것은 아니지만 슬픈 얼굴과 머리 위 화관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아마도 천경자가 처한 슬픈 현실에서 그녀가 꿈꾸는 행복을 한 폭에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미인도는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화가 본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천경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기다리는 편이 된 나는 끝없이 두 갈래로 평행선을 이루는 철길을 아득히 바라보다가 그가 다가오는 소리에 가슴 설레고 형용할 수 없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라고 수필에서 썼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말한것처럼 만날 수 있는 기다림은 가슴 설레는 행복이다. 사막여우처럼 정해진 약속의 기다림과 달리 협죽도 그늘 아래 기약 없는 여인의 기다림은 쉽지 않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녹 같은 기다림(황지우 표현 차용)’이다. “신작로 큰길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면 여자는 용수철처럼 퉁겨져 일어났다가 몸을 오므렸다”를 반복하였다. 다가오는 사람이 기다리는 신랑이었다가 아니었다가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지루한 기다림이었지만 신랑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라는 황지우의 말처럼 희망이 있는 한 가파른 삶은 기다리게 한다. 소설 속 여인의 기다림은 끝내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헛된 기다림이 아니었다. “여인은 기다리는 동안 늙지 않았다.”라는 것은 헤어질 때의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다림은 여인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 덜 늙을 수 있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대학합격 소식이나 겨울방학을 기다리거나 사랑하는 이를 기다린다. 그간 각자 많은 것을 기다렸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으로 가는 지금, 기다렸던 것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힘을 내었으면 한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이고 희망이니까….



손병철<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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