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오늘날 ‘도서’ ‘도서관’이란 용어는 ‘하도낙서’에 연유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오늘날 ‘도서’ ‘도서관’이란 용어는 ‘하도낙서’에 연유
  • 김종현
  • 승인 2023.12.2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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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금호락수(琴湖洛水) 두물머리 집성촌의 배움터
태백 황지~부산 낙동강 513.5㎞
유역 면적 남한 면적 23.4% 차지
낙동이란 ‘가락의 동쪽’이란 뜻
가락은 삼국시대 가야국 ‘상주’
김정호 대동여지도에 ‘낙동강’
금암서당
다사읍 매곡리에 위치한 금암서당. 그림 이대영

◇낙빈서원과 금암서당

낙빈서원(洛濱書院)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하다. 사육신을 모시고자 1679(숙종5)년에 세운 ‘하빈사(河濱祠)’에서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을 배향하였다. 1694(숙종20)년에 ‘낙빈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이곳에 세워진 연유는 순천박씨 박팽년(朴彭年)의 후손들이 묘골(묘리)에 세거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박팽년은 조선왕조실록에 178번이나 나오는 역사적 인물로 세종실록에 18번,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등에도 등장하나 심지어 1909(순종2)년 1월7일자 순종실록에선 “연로에 있는 선비들과 이름난 신하들의 사당들에 모두 치제하다(故忠正公 朴彭年...遣地方官致祭).”라는 하명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묘골에는 1981년에 ‘육신사(六臣祠)’라는 사우(祠宇)를 건립하여 사육신과 박팽년의 부친 박중림을 같이 모시고 있다.

서호(西湖)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움터로는 금암서당(琴岩書堂)이 있는데, 다사읍 매곡리(1102-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1764(영조40)년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 1530~1593)과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 1553~1594) 부자를 배향하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재사(齋舍)로 건립되었다. 이후 1786(정조10)년에 서원의 모습을 갖췄으나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8년 서당(書堂)으로 복원하였다. 임하(林下) 선생은 1570(선조3)년에 사마시(司馬試) 급제로 남부참봉(南部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1592(선조25)년 음력 4월 13일에 임진왜란이 발생, 임하는 63세임에도 음력 7월 6일에 지역유림들을 팔공산 부인사 의병창의 회합을 마련하여 지역의병군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자 의병대장(義兵大將)에 추천되었다. 아들 정광천(鄭光天, 1553~1594)은 하빈면 남면의 의병장을 맡았다. 당시 대구는 ‘왜적이 한양으로 진격하는 길목(京進之頸)’으로 관군이 패배하자 왜적 주력부대가 후방공격을 방어하고자 1천600여 명의 잔여병을 대구향교에 주둔시켰다. 이에 의병으로 후방교란전을 하고자 의병창의를 함으로써 관군을 지원하게 되었다(義兵倡義, 以襲倭後,而支官軍).

◇낙수(洛水)란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도서관, 가락(駕洛, 가야, 김해), 낙론(洛論, 人物性同論), 낙학(洛學,洛論), 상락(上洛, 新羅尙州), 호락논쟁(湖洛論爭, 湖南洛水論爭) 등이 ‘낙수’에서 나왔다. 오늘날 낙동강은 태백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부산하구언까지 513.5㎞, 유역면적 23,384㎢로 남한 면적의 23.4%를 차지하고 있다. 삼국시대엔 ‘황산진(黃山津)’이라고 했다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선 ‘낙수(洛水)’, ‘가야진(伽倻津)’이라고 했다. 여기 ‘황산진’의 황산은 오늘날 양산군 물금면 물금리 ‘황산나루(黃山津)’혹은 ‘가야나루(伽倻津)’라고 했다.

낙동강에서 ‘낙동(洛東)’이란 ‘가락의 동쪽(駕洛之東)’이란 뜻이다. 여기서 ‘가락(駕洛)’이란 삼국시대 가야국의 땅이었던 오늘날 상주(尙州)를 칭했다. 오늘날 상주는 첨해왕 때 사벌주(沙伐州), 법흥왕 때 상주(上州), 진흥왕 때 상락군(上洛郡), 신문왕 때 복원해 경덕왕 때 상주(上州)로 혜공왕 때 사벌주(沙伐州)로 다시 되돌렸다. 이렇게 내려오는 동안 ‘상락’이라 별호를 갖게 되었다.

사실, 뤄허(洛河, Luo He)는 중국 화산(華山) 서남부의 산서성(山西省) 뤄남현(洛南縣)에서 발원하여, 허남성으로 유입하여 궁의시에서 황하(黃河)에 합류한다. 뤄허를 옛날에는 낙수라고 했다. 그 강의 전체 길이는 420㎞ 정도이며, 청동기 뤄허강 유역에는 BC 2100년~BC 1500년까지 얼리터우문화(二里頭文化, Erlitou culture)를 형성하였기에 그 지역을 ‘낙양’이라고 했다. 하(夏)나라 우왕이 낙수(洛水)에서 거북등껍질(龜甲)에 새겨진 그림(45개의 점)을 보고 ‘낙서(洛書, 後天八卦)’를 창안했다. 여기서 주역원리(周易原理)에 기원이 되었던 ‘하도낙서(河圖洛書)’에 대해 “하늘이 신묘한 물증을 내보이시니, 성인들은 그 원리를 규명하여 천지변혁에 모델로 삼아, 대자연의 길흉을 드러냄을 판단하게 되었다. 황허의 하도와 낙수에서 낙서가 그 원형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도서(圖書)’와 ‘도서관(圖書館)’이란 용어는 ‘하도낙서(河圖洛書)’에 연유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낙동강 이전에 ‘낙수(洛水)’ 혹은 ‘상낙(上洛)’이라는 용어가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보다 자세하게 언급하면 1487(성종18)년 2월에 초간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낙수(洛水)’혹은 ‘낙동강(洛東江)’으로 적고 있으나, 1751(영조27)년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의 ‘택리지(擇里志)’에서는 ‘가락의 동쪽 강이라고 낙동강(洛東江是駕洛之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는 “상주의 동쪽 강이라고 낙동강”으로 하고, 김정호(金正浩, 1804~1866)가 1861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도 ‘낙동강(洛東江)’으로 명칭을 적었다.

오늘날에는 영남유림의 유학(儒學)을 낙동강 ‘낙수(洛水)’를 기준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중심으로 하는 ‘낙상학(洛上學)’과 남명(南明) 조식(曺植, 1501~1572)을 축으로 하는 ‘낙하학(洛下學)’으로 하고, 최근에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를 핵심으로 하는 ‘낙중학(洛中學)’으로 분류하고 있다. ‘조식(曺植)’이란 검색어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국역본에 240회, 한문원문에서 228회 나오고 있는데, 한글번역본(240회)을 중심으로 연산군 일기 1회, 중종 1회, 명종 33회, 선조 31회, 선조수정 26회, 광해군중초본 57회, 인조 7회, 효종 1회, 현종 2회, 현종개수 3회, 숙종 2회, 영조 7회. 정조 8회, 순조 2회. 고종 3회나 언급되는 역사상 큰 영향을 준 인물임을 확인 할 수 있다.

한국번역에서 ‘조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2건이 있어 1463(성종6)년 2월14일 기록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620)이 태어나기 이전에 인물이고, 1602(선조35)년 9월25일자 “경상도에 사는 오여은과 당시 사관 정인홍의 변명하다.”에서 정인홍은 조식(趙植)의 고제(高弟, 高足弟子)라는 기록이 있어 원문을 확인하니 ‘조식(曺植)’을 번역하며 착오를 내었다. 많은 저서에서도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확인하지 않고 ‘조식(趙植)’으로 기록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오늘날 용어로 수제자(首弟子)에 해당하는 ‘고족제자(高足弟子)’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은 1610(광해군2)년 9월 오현문묘종사(五賢文廟從祀)에 대해 국왕문병을 빌미로 “이언적과 이황의 문묘종사가 부당함.”을 사직상소(辭職上疏) 올려 사건화 되었다.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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