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후학 양성은 문중 발전 도모하는 학문유산 계승작업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후학 양성은 문중 발전 도모하는 학문유산 계승작업
  • 김종현
  • 승인 2024.01.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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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금호강 르네상스의 미래를 내려다보다
‘삶은 배움이고 배움이 삶이다’ 개념
죽은 사람의 紙榜 등에 ‘學生’ 적어
선인들, 생활·경험 통해 암묵지 익혀
금호강 물 섶에 금암·승호·남계서당
군위군, 삼한시대 진한 12국 중 하나
BC 108년 이후 3세기 후까지 성장
신라 복속 이후 군위현으로 바뀌어
작년 7월 1일자로 대구시에 편입돼
군위군포함대구
군위군이 대구에 편입되면서 대구의 모양이 타이거(Tiger)의 T를 닮았다. 그림 이대영

◇삶이란 배움이고, 배움이 삶이다(生卽學, 學卽生)

오늘날의 배움은 제도적인 교육기관을 통해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를 학습하는 공식적 학습(公式的 學習, formal learning)이 대부분이다. 개인적인 특수경험, 노하우, 비기 등의 비형식적인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는 비공식적 학습(非公式的 學習, informal learning) 혹은 자기주도학습(自己主導學習, self-directed learnig)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오늘날 인적자원개발이란 변혁을 초래함에는 조지 엘튼 메이요(George Elton Mayo, 1880~1949)라는 인적자원관리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산업문화의 인적문제(The Human Problems of an Industrialized Civilization)’라는 저서를 통해서 과거 노임비(급료, 임금), 교육비, 채용비용 등의 비용계정으로 종사자(노동자, 직원 등)를 계산했으나, 이를 뒤집어 ‘인적자원(human resource)’ 혹은 ‘인적자본(human caipital)’으로 사고전환을 초래했다. 또한 유네스코를 통해 학령교육에서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으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BC 500년부터 “삶이란 배움이고, 배움이 삶이다(生卽學, 學卽生).”라는 개념으로 죽은 사람의 개관(蓋棺), 지방(紙榜), 영전(靈箋), 위패(位牌), 묘비(墓碑), 지석(誌石) 등에다가 ‘학생(學生)’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오늘날 용어로는 평생교육이다. 배우는 방법은 특이했다. 천재가 아닌 이상 태어나자말자 알지(生而知之) 못하기에,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學而知之)이 일반원칙이었으나, 선인들은 생활과 경험을 통해서 암묵지를 익히는(困而知之) 것이었다. 그러나 최고수준의 득도는 ‘자기 스스로 배움(學己, self-learning)’을 통해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게 했다. 삼경(三經)의 하나인 예기에 ‘학기편(學己篇)’이 있다. 오늘날 용어로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이다. 선인들의 학기(學己)는 오늘의 자기주도학습을 넘어서고 있다.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수신제가(修身齊家), 중용(中庸)과 신독(愼獨) 등의 득도과정은 불교의 참선(參禪) 혹은 수도(修道)와도 같았다.

우리의 선인들이 ‘요수지락(樂水之樂)’을 만끽하면서 문중의 앞날을 위해서 교학상장(敎學相長)하겠다고 세웠던 시설이 바로 서원, 서당, 재실이고 정자와 누각이었다. 어떤 면에선 이와 같이 후학 혹은 후손을 양성하는 일은 바로 자기와 자신의 문중의 발전을 도모하는 학문유산 계승작업이었다. 논어(論語)에서 말하는 자신을 위한 학문(學者爲己)이다.

금호강 물 섶에서 교육상장(敎育相長)을 위해서 세웠던 집성촌의 서당으로 다사읍 매곡리(1102-1번지) 금암서당(琴岩書堂)은 1764(영조40)년에 세웠으며, 정사철(鄭師哲, 1530~1593)과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 1553~1594) 부자를 배향한다. 1786(정조10)년에 서원의 모습을 갖췄으나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8년 서당으로 복원되었다. 낙동강 물섶에는 논공읍 삼리리(136-1번지) 승호서당(承湖書堂)이 있는데 이난미(李蘭美, 1592~1661)를 추모하고, 후예양성을 위해서 1795(정조19)년에 건립했다. 화원읍 본리리(401-2번지) 세칭 남평문씨 세거지에 있는 수봉정사(壽峰精舍)는 문영박(文永樸, 1880~1930)을 기리고자 문중 강학당으로 1936년에 건립하였다. 문영박 지사는 1919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전국 각처를 돌면서 군자금을 모금해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독립운동으로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유가읍(瑜伽邑) 가태리(375번지)에는 남계서당(藍溪書堂)이 1860(철종11)년에 건립되었으며, 곽월(郭越, 1518~1586, 아들이 郭再祐)을 추모하고 있다.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후손들에 의해 서당으로 중건되었다. 곽월 선생은 조선왕조실록에 국역 16회, 한문 16회로 32회나 기록이 나오며, 최초는 1570(선조3)년 5월13일자 “서용되어 직첩을 주었다(郭越等敍用…職牒還給事).”이고, 마지막은 1592(선조25)년 6월1일자 “현풍(玄風)사람 곽재우(郭再祐)는 고(故) 목사 곽월(郭越)의 아들이다(玄風人郭再祐, 故牧使郭越之子也)… 항상 붉은 옷을 입고 스스로 홍의 장군(紅衣將軍)이라 일컬었는데, 적진을 드나들면서 나는 듯이 치고 달리어 적이 탄환과 화살을 일제히 쏘아댔지만 맞출 수가 없었다(常着紅衣, 自稱紅衣將軍, 出入賊陣, 馳驟如飛, 賊丸矢齊發, 不能中.)…

◇군위(軍威), 대구의 북두칠성(北斗七星)

오늘날 군위군(軍威軍), 삼한시대 진한(辰韓) 12소국 가운데 하나였던 ‘여담국(如湛國)’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조에 나오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 地理志) 숭선군조(崇善郡條)에 “군위현은 본시 노동멱현(奴同覓縣)인데 신라 경덕왕이 군위로 고쳤다(軍威縣,本奴同覓縣. 景德王改名,今固之).” 또한 ‘여두멱(如豆覓)’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신라어 여두멱(如豆覓)을 당시 한자음으로 여담(如湛)으로 표기했다. BC 108년 이후 진한연맹체(辰韓聯盟體)의 한 나라로 세력을 유지해 3세기 이후까지 성장하다가 신라에 복속되었다.

신라 복속 이후는 숭선군(崇善郡: 軍威縣, 孝寧縣, 缶林縣)으로 있다가 757(경덕왕35)년 군위현(軍威縣)으로, 1018(고려 현종9)년 상주목(尙州牧) 군위현(軍威縣)으로, 1143(의종16)년 일선국(一善郡) 군위현으로, 1390(공양왕2)년 경상도 군위현, 1895(고종32)년 6월23일 경상북도 군위군, 1914(일제)년 4월1일 경상북도 군위군, 2022년 12월8일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제19155호, 2023.1.3.제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3년 7월1일자로 대구광역시 군위군으로 편입되었다.

한편 군명칭에 대해 934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통일 무렵 후백제군을 공격하고자 이 지역을 지날 때 고려군의 위세가 당당함(過此地時,高麗軍勢, 堂堂之樣)을 보고, 이를 촌로에게 지명을 군위(軍威)라고 지어주었다는 일설이 있다. 역사적 사실은 이미 757(경덕왕35)년에 군위(軍威)라고 불리어왔었다.

9천만 년에서 1억1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전기지충에서 서식했던 공룡발자국이 지난 2009년 3월 7일에 군위읍에서 발견되었다. 발자국의 길이 354㎜, 폭 173㎜인 익룡(翼龍)의 앞 발자국이었다. 이는 세계최대 익룡이라고 했던 해남이크누스(Haenamichnus)의 전족장(前足長) 330㎜, 폭 110㎜ 보다 크며, 동시에 이보다는 작은 익룡(공룡)들 여러 마리의 발자국 화석이 함께 출토되었다. 우보면(友保面) 나호리(羅湖里)에서는 공룡골격까지 발견되었다.
 

 
권택성<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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