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길꽃
[좋은 시를 찾아서] 길꽃
  • 승인 2024.01.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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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시인

길 안의 꽃을 길 밖에서 걷게 하려고

왼발 오른발 산그늘을

두 발로 걷어찬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꽃이

거기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면

산중에서 들로 데려와 흔들진 말았어야지

길에서 피어나는 널 두고

불평 없는 꽃이라며

팔 벌리고 튕기는 춤사위로

나 오늘 널 날려 보낸다

보잘 것, 없는 외발 바람에도

걷어차인 너는 나를

용서의 눈빛으로

물끄러미 보았다 할 것이다

◇홍준표= 계간 ‘문장’ 등단. 형상시학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 ‘커튼 콜’, ‘구조적 못질’, ‘오래 머물고 싶은 그늘’이 있음.

<해설> 이 시는 단순한 길과 꽃에 대한 어떤 단상을 적은 시가 아니라 길과 꽃이라는 시인만의 개인적인 상징의 옷을 입히고 있다. 시인은 지금 절대자를 향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길은 집을 나선 자의 거처이자 또한 멈출 수 없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인데, 그 길을 가로막는 것이 꽃일 때 시인의 발길질은 산그늘을 걷어차면서 꽃을 길 밖으로 유도한다. 꽃이 길을 가로막는 것은, 길에 대한 꽃의 애착일 것이지만 애초에 산중에서 꽃을 데려온 것 또한 나, 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는 후회와 함께 팔 벌리고 튕기는 춤사위로 꽃인 너를 날려 보내려 한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심정을 꽃이 다 알아주길 기대하는 시인은 꽃에게 용서의 눈빛을 돌려받고 싶어 한다. 혼자 묵묵히 걸어가야 할 고행의 어떤 길에서 꽃에 더는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길이 곧 그에겐 현재 가장 절박한 꽃이므로.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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