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부역
[대구논단] 부역
  • 승인 2024.01.1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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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1970년대에는 마을 단위의 부역이 많았다. 부역은 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지우는 노역을 말한다. 부역은 오래전부터 민초들의 일상이 되었었다.

부역은 옛날에도 형평성에 말이 많았다. 양반을 제외한 평민이 부역을 담당하였으나, 평민도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은 돈으로 대납하고, 이미 몰락한 양반이라도 명색이 양반이라면 부역에 동원되지 않았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부역을 공평하게 하지 못하면 옳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부역을 고루고루 가볍게 하여 민력을 배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대국가에서는 건설과 토목을 주로 부역에 의존했다.

부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5천 년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전개한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 생활 밀착형 노력 봉사 활동으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새마을 운동의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은 ‘부역을 왜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배제하는 기제가 되었다.

70년대 초 가장 많이 동원된 부역은 마을 도로 정비이다. 당시 경북 북부 지방 촌락들은 마을버스가 읍소재지에서 원활하게 다니는 노선이 드물었다. 그 당시 도로 조건은 부역을 사흘 도리로 필요하게 하였다.

이런 마을도 있었다. 하루에 버스가 2번씩 마을로 오고 갔다. 물론 비포장도로다. 읍내로 가는 도로 중간쯤에는 꼬불꼬불 돌고 돌아 해발 500m 정도가 되는 고개가 있었다. 특히 요즈음처럼 눈이 많이 오거나 비가 오면 이 고개가 말썽이다. 버스가 스톱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많았다.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다. 비가 와서 길 위에 돌이 굴러 내려앉아 있다. 해빙기에 지반이 약해 위험하다. 마을로 버스가 다니고 못 다니는 것은 버스 운전기사 마음이다. 법도 없다. 운전기사가 길이 위험해서 못 간다면 못 가는 거다. 운전기사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중간에서 버스를 몰고 읍내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다. 촌로들은 버스가 오지 않는 소식을 알 수 없어 무작정 차를 기다리다 하루를 공친다. 이때 고생하는 사람은 새마을 지도자이다. 버스와 마을 사람들 간의 정보교환, 갑작스러운 부역 독려, 그리고 부역 준비 모두 지도자 몫이다. ‘부역 나오소’ 새마을 지도자의 독려가 산골짜기를 울린다.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씩 농기구를 가지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간다. 해는 어느덧 새참 먹을 시간이 되었다. 부역은 그렇게 하루가 간다. 그러나 그때 마을 사람들은 부역에 대해 불평이 없었다. 부역은 모두 내가 할 일이었다. 부역에 거의 100% 마을 사람들이 참여했고, 꼭 참석해야 하는 당연한 일로 여겼다. 마을 사람들은 버스에서 혼자 기다리는 운전기사를 만나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모두가 죄인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2020년대, 민주화 사회의 부역에는 Why가 따라붙었다.

밤사이에 사발통문이 돌았다. 내일 아침에 마을에서 새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마을 도로변 가로수 길의 잡풀을 뽑고 겨울 동안 무너진 길을 보수한단다. 봉사 활동이다. ‘지금 어느 세월인데 부역을 하는가?’ 아침잠에서 덜 깬 상태로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불평이다. 이웃 체면 때문에 참여율은 높았지만 귀찮은 표정에 오만상이 찌그러져 있다. ‘왜 우리가 부역해야 하지?, 일당도 안 준다면서, 시니어 공익요원이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러다 이장에 대한 의심의 소리도 터져 나왔다. 누군가 근거 없는 소리를 한다.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고 하던데….’ 도로 정비와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도 있다. 진도는 나가지 않고, 시간만 흐른다. 그러다 아랫마을에 사는 60대 후반의 젊은이가(?) 예초기를 가지고 아래, 윗동네 가로수 길을 깨끗이 처리했다. 마을 이장이 우유를 한 통씩 돌렸다.

부역 사건은 소통이 안 된 데서 출발하였다. 우리 동네 가로수 길은 평소에 다른 마을보다 유달리 복잡하였다. 집집이 가로수 사이로 들깨도 심고 고추도 심었다. 유실수도 심고, 꽃도 심고, 그냥 풀밭으로 팽개쳐놓기도 하고, 흙이 유실되어 무너지기도 하고, 참 가관이었다. 평소 승부욕이 넘쳤던 이장은 우리 동네 가로수 길을 다른 마을보다 말끔하게 정비하고 싶었다. 여러 사람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내 마음만 믿고’ 일을 밀어붙였다. 이장은 민주주의 출발은 소통과 대화인 것을 간과하였다. 민주주의는 참 어려운 것이다. 의욕만 앞서도 안되고, 독주는 더욱 안 된다. 나라님이 하는 일이나 산골 마을 일이나 가정사나 모두 똑같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순간 여전히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다. 미래는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사람들의 시간도 흘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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