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설탕, 과거엔 약·현대엔 질병 원인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설탕, 과거엔 약·현대엔 질병 원인
  • 윤덕우
  • 승인 2024.02.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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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전 뉴기니 사탕수수 재배
십자군 전쟁 때 약품·사치품 인식
서아프리카서 서유럽으로 공급
삼성, 1953년 제당사무소 설치
기술 문제 해결하고 정제당 생산
수입의존도 낮추고 가격 1/3↓
설탕 먹으면 쾌감 호르몬 분비
당 섭취가 소시민의 樂이 된 지금
달달하고 따스한 사회 조성해야
탕후르3
요즘 10대들의 최애음식 중 하나인 탕후루.하나의 소비유행이 된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즘 10대를 알려면 “마라탕, 탕후루, 동전 노래방, 포토 부스(즉석사진관)” 4가지만 알면 된다는 말이 있다. 또래들과 ‘마라탕’을 먹고, 후식으로 ‘탕후루’를 즐기며, 소화도 시킬 겸 동전 노래방에서 흥을 즐긴 뒤, 마지막으로 포토 부스에서 즉석 사진 한 방 찍고, 학원이나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고 한다. 특히 10대들의 ‘최애(最愛)’ 메뉴인 탕후루는 달달하고 바삭한 식감으로 하나의 소비 유행이 되었지만 탕후루 섭취가 당뇨와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어 부모들 걱정이 늘었다고 한다.

탕후루는 긴 나무 꼬챙이에 과일들을 끼운 다음 설탕 녹인 물을 입혀서 만든 중국의 겨울철 길거리 음식으로 중국어로 ‘탕’은 설탕, ‘후루’는 박을 뜻하므로 ‘설탕을 얇은 박으로 입혔다’는 뜻이 된다. 딱딱한 탕후루를 먹다 보면 입천장이 까지거나 치아가 깨지기 쉽고, 설탕이 녹아 끈적끈적 해지면서 금니나 임플란트 등 치아 보철물이 빠질 수 있어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탕후루는 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중국 북송 시대 황제인 광종의 후궁 ‘황귀비’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어떠한 약을 써도 병이 낫질 않자 황제의 어의(御醫)가 산사나무 열매와 설탕을 달여 식전에 먹게 했는데 이후 황귀비가 완쾌하자 백성들이 산사 열매를 긴 나뭇가지에 엮어 먹기 시작한 것이 탕후루의 유래라고 한다.

체내에 당이 부족하면 생명에 위험할 수도 있어 역사적으로 설탕이 포함된 당류는 생명 유지에 꼭 필요했다. 특히 단맛이 나는 물질은 자연적으로 독을 가진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안전을 담보하는 먹거리였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단맛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뱃속의 태아도 3개월 무렵이면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인 미뢰가 발달하며 7개월쯤이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단맛 나는 음료를 마셔 양수가 달면 태아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수를 마시며, 반대로 엄마가 쓴맛이 나는 음식을 먹으면 양수를 마시지 않으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단맛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생성되는 것 같다.

유아기를 거쳐 어린이가 되면 단맛에 대한 선호는 더 강해지는데 뇌 발달과 성장에 필요한 당분과 지방을 단 음식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군인들이 애타게 찾는 음식들도 단맛이 많고, ‘당 떨어졌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직장인들에게도 단맛 음식은 손쉽게 열량을 보충하고 기분전환과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는 ‘아군(我軍)’이 된다. 지금이야 쉽게,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설탕이지만 설탕이 발견되기 이전, 인류는 단맛을 ‘벌꿀’에만 의존했던 일명 ‘벌꿀의 시대’를 최소 수천년간 살아야만 했다. 약 7천~1만5천년 전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발렌시아 아라냐 동굴에는 한 여성이 높은 벼랑에 올라 벌집에 손을 넣어 꿀을 채취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는데 주변 벌떼들 사이에서 단맛을 위해 목숨을 건 인간의 욕망을 볼 수 있다.

설탕의 발견으로 인해 인류의 ‘벌꿀의 시대’는 마감하게 된다. 설탕은 자당(sucrose)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감미료로서 사탕수수와 사탕무로부터 생산되는데, 기원전 4세기 정복 전쟁에 나섰던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에서 가져오면서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사령관 네아체스는 “인도에서는 벌의 도움 없이 갈대 줄기(사탕수수)에서 꿀을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탕수수는 지구상 존재했는데 약 1만 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뉴기니’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했다고 한다. 그 후 인도, 동남아시아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이슬람 상인들이 인도에서 사탕수수재배와 제당기술을 배워 이슬람 교역권을 통해 설탕을 아랍지역 전체에 전파 시켰다고 한다. 유럽에는 십자군 전쟁 때 베네치아를 통해 전해졌는데 그 당시 설탕은 값비싼 귀중품이어서 약품으로 사용되었고 사치품으로서 하나의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유럽지역은 기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카리브해 등에 플랜테이션을 만들었고 노동력 확보를 위해 노예들을 사들였다. 그 결과 설탕의 산지인 카리브해와 노예공급지인 서아프리카, 그리고 설탕 소비지이자 자본의 공급지인 서유럽 간의 환대서양 삼각무역이 성립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설탕은 오늘날 세계자본주의 시장의 모태가 된다. 또한 설탕은 중국의 차, 이슬람의 커피, 영국의 홍차와 결합하여 세계의 식품과 기호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세계의 상품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설탕은 빠질 수 없다. 6.25 전쟁을 겪는 동안 삼성 창립자 이병철은 폐허와 빈곤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공업화를 추진하는 것밖에 없다고 보았다. 특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필수물자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것만이 국가와 국민의 자립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가장 국산화 가능성이 높은 물품을 생산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설탕’이었다. 1953년 5월 삼성물산에 제당사무소를 설치하고 부산 전포동에 제당공장부지를 마련했지만 자금과 기술 등의 문제로 난관을 겪었다. 그러나 이병철은 이러한 난관을 이겨내고 첫 설탕을 생산하게 되었지만 쏟아져 나온 제품은 새하얀 정제당이 아니라 액상 밀당이었다고 한다. 이때 충격을 받은 이병철은 기계 결함의 원인을 찾으려고 백방 노력했으나 찾을 수 없어 허탈해하며 기계 앞에 주저 앉아 꼬박 이틀 밤낮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 그 근처를 지나던 철공소 용접공이 “원료를 왜 저렇게 많이 넣었습니까?”고 말했는데 이때 이병철의 말에 의하면 마치 하늘에서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 용접공은 제일제당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탕의 국산화는 설탕 가격을 3분의 1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설탕의 수입의존도를 낮추었다. 이렇게 시작된 설탕의 대중화는 훗날 혼분식 장려운동과 제과·제빵이나 식품가공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요즘은 설탕 등 당분의 과다한 섭취가 고도비만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며 미운털이 박혀있지만, 역사적으로 설탕은 귀한 재료이자 약으로도 쓰인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탕이 소화를 촉진시켜 약이 된다”고 하였고, 11세기 아랍의 학자였던 ‘이븐 시나’도 “설탕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설탕을 먹으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쾌감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신경질이나 짜증이 날 때,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마다 단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악순환이 될 경우, 당류의 과다 섭취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뉴스를 보면, 묻지만 범죄 등 사회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정치적 논리가 만든 인기영합적인 정책들은 더욱 불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점점 더 좁아지는 계층적 사다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켜 한탕주의에 의존하게 만들며, 무능한 권력자나 리더들이 누리는 특혜와 특권은 가장 꼴보기 싫은 심리적 장애물이 되기에 어쩌면 ‘도파민’을 생성하는 당분의 섭취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유일한 ‘낙(樂)’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뉴스를 보면, 설탕값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상승원인은 주요 수출국인 태국과 인도 등지에서 사탕수수 생산이 저조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설탕 가격 상승세가 ‘슈거플레이션’(설탕을 원료로 하는 초코릿, 과자, 잼, 빵, 아이스크림 등의 동반 가격상승)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일명 ‘단맛’ 물가 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설탕이 비싸든 싸든 재미없고 짜증 나는 세상에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쾌감 호르몬이 분비해주는 설탕은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는 법이므로 설탕 등 당분의 과잉섭취는 건강상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당분의 과도한 섭취를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단맛 나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아도 단맛처럼 달달하고 따뜻한 사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쾌도난마’의 해법이 아닐까?

설탕을 많이 먹지 않아도 달달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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