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캐리커처를 읽는 밤
[좋은 시를 찾아서] 캐리커처를 읽는 밤
  • 승인 2024.02.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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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서 시인

내가 나에게 밤을 묻는다

아직도 약속은 유효한지요

무뚝뚝한 침묵을 타고 친절한 설국열차가 눈밭을 지나

자정으로 향해 갑니다

잘 지내니, 란 말이 철로에서 웃자라고 있어요

기차역에서 앵무새가 자꾸 태어납니다

잘 지내는 앵무새, 똑같은 표정의 앵무새가 되어가는,

나는 앵무새를 언제까지 키워야 할지 난감해요

그럼에도 나는 설국역에 도착했고 눈이 부셔 눈을 감았고

그러자 우스꽝스럽기까지한

꽤나 나를 닮은 캐리커처가 눈뭉치를 타고 왔어요

새로 탄생한 행성의 이름표를 달고 우주의 궤도를 돌아 왔다 하네요

웃어도 되는 밤인가요

방 안에는 착한 약속이 쌓여가고

여전히 잘지내고 있는

앵무새는 늘어나 터질 지경입니다만,

파랑새의 캐리커처를 가지고 있는 앵무새

창가에서 눈부신 우유빛깔의 날개를 폅니다

상상과 망상은 다른 것이겠지만,

여긴 방 안입니다

울지 말고 웃어봐

파랑새가 웃습니다

표정없는 내게 캐리커처를 선물합니다

앵무새는 말하면서 자신의 캐리커처를 그리는 것일까요

나의 캐리커처와 약속을 해요

앵무새와 함께 설국열차를 타고 내일로 가자고

■약력:▶2021 문학과 의식 등단.▶시집으로 《펜로즈 계단》 -시산맥사, 2021이 있음.▶시산맥 웹 운영위원.

■해설: 누가 잘 지내냐고 물어 주지 않을 때 내가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다른 누군가 물으면 당연히 잘 지낸다고 답을 하겠지만, 내가 나에게 건네는 대답은 사실 잘못 지낸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시인은 그럼에도 "방 안에는 착한 약속이 쌓여가고/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앵무새는 늘어나 터질 지경입니다만," 속마음을 반어법적으로 응답하고 있음이 또한 놀랍지 않은가. 얼굴의 특징적인 면을 간략한 선으로 묘사한 케리커처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깊은 탐색으로 보여진다. 앵무새를 데리고 설국열차를 타고 눈밭으로 달려가는 시인의 꿈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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