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주고받는 손길마저 평등하기를
[백정우의 줌인아웃]주고받는 손길마저 평등하기를
  • 백정우
  • 승인 2024.02.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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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유망의생스틸컷
영화 ‘유망의생’ 스틸컷.

인턴시절, 약 이름을 잘못 기재한 처방전으로 인해 호흡곤란과 질식과 경련을 일으킨 환자가 병원을 고소하자 친구 대신 사건의 책임을 지고 대학병원을 그만두는 유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승승장구하여 최고의 외과의가 된 반면 유문은 빈민가 창녀를 상대로 의료를 펼친다. 이지예 감독의 대만영화 ‘유망의생’은 사람 살리는 일에 조건 없이 헌신하는 의사 유문을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는 의사 로저의 반대편으로 놓으면서, 자기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즉 행복과 만족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나의 효용은 내 소득과 내 욕망 안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종종 내 소득과 효용이 늘어났는데도 다른 이가 더 많은 것을 가졌을 경우 우리는 성취 과정을 의심하고 사회 시스템을 불신하기도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것. 그런데 타인의 효용이 늘어날수록 내가 행복해지는, 즉 남의 행복이 내 만족과 직결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특히 부모자식간의)이다. 기부나 후원 같은 나눔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더러는 남을 도왔다는 만족감에,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관례처럼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기도 한다. 도움 받는 입장에서도 같은 마음일까. 혹시 나눔의 대미를 장식하는 인증샷이 불편한 건 아닐까.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모델이 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미래식당’이 그것이다. 좌석 12개에 주인 혼자 일하는 이 곳. 여기서 아르바이트로 50분을 일하면 900엔짜리 식권을 한 장 준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식권을 식당메모판에 붙이고, 필요한 이가 떼어 내면 누구나(절차나 설명 없이)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은 사람이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을 없앤 것이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든 법. ‘미래식당’은 단일 메뉴를 채택해 테이블 회전을 극대화하면서 수익도 포기하지 않았다. 식당 음식이란 맛있고 배불러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찾는 이들 모두가 포만감 이상의 행복을 별미로 얻어간다. 주고받는 손길이 평등해지는 장면이다.

‘유망의생’에서 유문이 생명이 위급한 친구(자기를 배신하고 모함한)를 수술한 건, 사람 살리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나눌 것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권력자나 평범한 시민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범시민이나 범죄자나, 똑같은 생명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진리 말이다. 결국 나누고 베푸는 사랑을 통해 상생의 원리는 작동한다.

(추신)

얼마 전 서울 모 병원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한 대법원의 실형 판결 확정에 따른 특별 사면 청원이 온라인에서 벌어졌다. 소아과와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현장 붕괴와 의대 입학정원 확대와 의료행위와 관련한 의사의 법적책임 범위와 한계 등, 예민하고 조심스런 그러나 반드시 숙고되어야 할 사안이 우리 앞에 놓였다.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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