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흘러내린 유리창에

얼룩이 서 있다

새 같거나 꽃 같거나

울혈이나 멍이 퍼진

한 몸의 결들이 짜놓은 듯

또는

영원히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 같은…

발각되지 않았을 뿐

내 문장에도

저처럼 얼룩이나 난해한 김이 서려 있다

누구도 모르게

쥬라기부터 홀로세까지

어떤 모진 유전이

내 몸을 들락거렸던 흔적일 게다

◇노현수=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방」, 「몽유」 출간. 2021년 대구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선정.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대구 시인협회, 대구 문인협회 회원.

<해설> 얼룩을 통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어떤 유전이 있다는 것일까? 시인은 자신이 쓰는 문장에도 그런 얼룩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을 받아쓰면 그게 문장이 된다고 볼 때, 말은 저 혼자 터득한 것은 아닐진 데, 말을 배울 때부터 이미 그 말을 통해 선천적인 어떤 유전적 암시가 인성까지를 담는 문장의 탄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건 아닐까. 얼룩이라는 상태는 결국 빗물이 원인임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유리창이 이미 유리창이라는 본질 위에 다양한 먼지와 꽃가루와 기타 햇살의 작용 등등의 외부적 요인이 버무려지면서 얼룩이라는 결정체를 남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얼룩을 시인의 예리한 상상촉수를 통한 관찰로 쥬라기에서 홀로세까지도 살피고 있다. 결국 시 쓰는 일을 얼룩을 지우려는 어떤 반성의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