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이끼예찬, 자세히 봐야 예쁘다...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이끼도 그렇다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이끼예찬, 자세히 봐야 예쁘다...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이끼도 그렇다
  • 채영택
  • 승인 2024.03.0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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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생명력
꽃·열매·씨·뿌리가 없는 식물
숲 이루는 가장 하층 생명체
풀·나무 없던 4억년 전 첫 등장
사막·산 정상·극지방서도 자라
왜 보호해야 할까
나무의 수분 증발 막아주고
뿌리에 물 공급 원활하게 도와
토양 양분 흡수 도와주는 균근
사진3
솔이끼의 모습. 나무뿌리 주변의 이끼는 지표면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어느 산촌 마을의 돌담길을 걷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군청색의 푸른 이끼가 내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때로는 야릇한 유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어느새 키 작은 아이가 그 은이끼 낀돌담길 모퉁이를 따라 걸어간다.

이끼는 마른 돌이나 나무 줄기, 땅은 물론이고 어둡고 습기찬 인간의 발길이 닫지 않는 어느 곳이든 그렇지 않든 그곳이 마르면 마른대로 습하면 습한대로 이끼는 빛의 스펙트럼이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온갖 미묘한 색깔로 변신하며 존재한다.

얼굴을 바위에 최대한 가까이 대고 맨눈을 크게 떳다가 혹은 작게 떳다가 나무와 돌에 붙은 이끼를 관찰하는 일은 무척이나 즐겁고 경이로운 일이다. 즐거운 것은 이끼를 자세히 바라보면 그들 나름대로 자연의 숲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현미경이 아닌 오로지 맨눈으로 관찰하는데 대한 소박한 즐거움이다. 경이로운 일은 그저 맨눈으로 관찰했는데도 그 군상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가 일상의 숲을 보는 느낌이랄까. 포자체라고 하는 맨 위의 씨앗은 나무의 수관부에 해당하는데 그 작은 씨앗에서 아래로 뻗은 가는 줄기와 옆으로 뻗은 엽상 조직들이 마치 나무의 모습과 닮았다. 뿌리도 있어야 하는데 이끼는 진정한 뿌리가 없다. 그래서 헛뿌리라고 한다.

내가 확대경이나 현미경으로 이끼의 완전체를 자세히 관찰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이끼에 대한 생태적 지위를 간단히 소개해 보면 이끼는 지구가 탄생하고 풀과 나무가 등장하기 이전인 4억년 전부터 먼저 지구에 등장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선태식물(蘚苔植物,Bryophyte)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였다. 선류와 태류라는 이름인데 관다발조직(물관과 체관으로 이루어지며 물관부는 뿌리에서 물을 흡수하여 줄기를 통해 잎까지 이동하는 통로이며 체관은 잎의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아래 조직까지 이동시켜 주는 관을 말한다)이 발달하지 않는 원시식물로 사막이나 산 정상 심지어 극지방까지도 자랄 수 있는 식물이다.

전세계에 약 2만5천여 종이 분포하고 유성세대와 무성세대가 뚜렷이 이루어지며 세대교번을 한다. 우리는 종종 이끼가 아닌 식물에도 이끼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순록이끼는 지의류고 스페인이끼는 틸란드시아라고 알고 있는 수염처럼 길게 자라는 식물로 속씨식물인 꽃식물이다. 그 외에도 곤봉이끼는 석송류이다. 다시 말해 이끼는 꽃과 열매, 씨, 뿌리가 없는 식물이다.

식물 중에서 가장 키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이끼가 어떻게 지구의 구석구석이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을까. 이끼의 일생을 잠시 살펴보자. 우선 포자의 발아체가 세포분열을 해서 다수의 경엽체를 만들고 여기서 배우체가 만들어지는데 배우체가 수정을 하면 포자를 만든다. 이 포자는 건조에 강하고 가벼워서 멀리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포자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또 다른 번식 방법은 이끼 본체의 일부가 떨어져나가 무성아로도 번식을 하며 무성아는 자라 완전한 경엽체가 되어 배우체가 되면 또 다시 포자를 만들어 이끼의 일생이 반복된다. 그 외 줄기나 잎 등 이끼의 일부가 떨어져 새로운 경엽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혹은 이끼를 잘게 부수어 파종하는 방식으로 이끼를 증식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듯 이끼는 자신의 온 몸을 모두 이용하여 완전한 배우체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즉 오랜 세월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 정말 이끼의 경이로운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끼가 끼었다고 하면 낡고 부패한 쓸모없는 물건이나 장소 혹은 사물에 붙이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끼에 대한 부정적인 우리들의 편견일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필자가 10여년 전 모 조경회사에서 잔디를 관리한 적이 있다. 그것도 관리가 매우 어려운 외래 잔디인 골프장 잔디인데 페어웨이에 주로 쓰이는 켄터키블루그래스와 그린에 쓰이는 벤트그라스였다. 물빠짐이 좋은 곳은 관리가 쉬워서 언제나 푸른 잔디가 잘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물빠짐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끼가 끼거나 조류가 그 자리를 메꾸곤 했다. 매번 잔디를 들어내고 다시 심기도 하고 때로는 조류와 이끼를 죽이는 농약을 치기도 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결국 잔디 밑의 흙을 전부 들어내고 배수시설을 한 후에야 이끼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끼는 다른 식물을 죽이는 일이 없다. 이끼가 잘 자라는 환경이 되어서 들어와 살 뿐이다. 그러니 이끼만 죽어라하고 별 짓을 다해 보았지만 결국 이끼가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고서야 문제는 해결되었다. 잔디가 죽는 이유는 물이 너무 많아 배수가 잘 안되거나 땅이 단단해 공기가 들어가지 못해 죽는 경우, 햇빛을 잘 받지 못해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끼 탓이 아니다.

도시인들은 이끼를 무척 싫어한다. 어디든지 이끼가 생기면 먼저 없애려고만 한다. 숲 속이나 조경공간의 나무 줄기에 붙은 이끼를 보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끼 때문에 나무가 죽지 않을까라는 걱정부터 한다. 나무곁에 붙어 있는 이끼는 나무 주변에 습기가 많아 자연스럽게 공생하는 관계로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 경우다. 하지만 나무는 이끼 때문에 생존에 지장을 받을 염려는 거의 없다. 오히려 가뭄으로 인해 나무의 수피로부터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이끼는 막아준다. 스폰지처럼 헛뿌리가 수피에 달라붙어 피목으로부터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억제하여 오히려 나무의 생장을 돕는 효과가 있다.

이끼는 공해에 매우 취약하다. 도심의 자동차 매연(질소화합물)이나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황산가스 등은 이끼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이끼는 오염의 생물학적 관측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도심내 보다는 도심을 약간 벗어나면 이끼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환경 오염물질의 농도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왜 이끼를 보호하고 감사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해 보겠다. 이끼는 숲을 이루는 가장 하층에 사는 생명체다. 숲으로 비가 내리면 빗물은 숲의 나뭇잎이나 가지에서 물이 바로 떨어지기도 하고 잎에서 시작해서 수피의 터진 골을 따라 흘러내려 천천히 굵은 줄기를 고 지표면으로 내려오면 온갖 영양분이 섞인 물로 바뀌면서 뿌리에 공급해 준다. 이때 뿌리 근처에 이끼가 있으면 수분의 지표 증발을 느리게 해주고 천천히 물을 머금은 이끼는 뿌리를 향해 물을 제대로 허실 없이 공급해 줄 수가 있다.

숲에는 나무가 잘 자랄수 있도록 부엽토가 쌓인 부분에는 마이코리자(mycorrhizae)라고 하는 균근이 살고 있는데 이 균은 나무 뿌리가 토양의 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나무의 뿌리에 기생해서 돕는 역할을 한다. 반대급부로 이 균은 나무로부터 만들어진 당을 섭취하면서 살아가는 공생미생물인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끼층 아래에 훨씬 더 많은 균근이 있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균근은 이끼와 나무 뿌리의 영양소 공급의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그들의 관계망이 이토록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아가는 줄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알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섬나라의 특성상 습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그래서 ‘와비사비’ 문화가 독특하게 자리하고 있다. 단순함을 뜻하는 와비와 낡음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와비사비는 완벽하지 않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인데 미완성의 아름다움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소중히 하는데 여기에는 이끼가 자주 등장한다. 또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느리고 여유롭게 자연과 함께 사는 영국의 ‘킨포크 족(kinfolk 族)’의 삶에도 촉촉하고 푸른 이끼가 그들의 발 밑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요즘 이끼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질감을 활용한 이끼테라리움이 유행이다. 자연을 집안에 들여 놓고 싶은 소유의 욕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농부가 땅의 설치미술작가라고 한다면 이끼는 ‘자연을 채색하는 화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옥상 녹화시 탄소 중립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것도 다른 녹색식물보다도 이끼가 최적이라고 한다. 기후 변화 시대에 낡고 오래된 부패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이끼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관심이 필요할 때다.

임종택 <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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