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의사파업이 능사가 아니다
[수요칼럼] 의사파업이 능사가 아니다
  • 승인 2024.03.1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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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길을 걷다 보면 병원 건물과 병원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산부인과와 외과 병원은 찾기 어려운 반면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병원은 자주 목격된다. 또한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의료시장은 이미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의료집단 내에서도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수는 갈수록 줄고 있고, '피안성'으로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사가 시류에 편승하여 진료과목을 선택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는 다르다. 공공 이익을 다루는 국가는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의료 수요에 대응해 의료인을 양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왜곡된 의료시장을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왜곡한 의료시장은 무엇일까? 의료인도 인정하듯이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수 부족과 의사의 지역편중 현상이 아닐까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의대 입학정원 확대이다. 의대 입학정원은 의사단체의 반대로 2006년 이후 3053명으로 동결됐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은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되었으나 코로나 19 확산과 의료계의 반발로 인해 연기되었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천 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은 3.7명에 비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사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도 지역 편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보건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와 지역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와 비수도권 대학의 지역인재전형 선발비율을 60퍼센트 늘리기로 했다. 의사협회는 의료시스템 붕괴, 교육의 질 하락, 국민 건강권 침해 등을 이유로 증원 추진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진료 거부에 나서며 시작된 의사파업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서울대 의대교수들이 비상총회를 열어 전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8일에 일괄 사표를 제출하겠으며, 참석 교수들의 동의율은 87%라고 밝혔다.
파업을 하고 있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과연 타당한가? 의료시장은 겉으로는 독점적 경쟁시장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익단체인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인 독점시장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의사협회의 의료시장 진입 봉쇄는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경쟁을 제한하기 때문에 독점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의사협회는 이미 한의사와 약사 그리고 간호사 협회와 싸워 의료시장의 집입장벽을 지키는데 성공한 노하우가 있다.
우리 사회는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의료서비스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그동안 의료시장은 의사협회의 의사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수요와 불일치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의료소비자가 떠안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수요에 맞게 의사 공급을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료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면 된다.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게 되면 의료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게 되면서 의료서비스는 좋아지겠지만 이익단체인 의사협회는 독점이윤을 포기해야 한다. 외면적인 이유는 의료비용의 증대와 의사의 자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핑계다.
만약 의과대학이 증원된 의대 입학생을 수용할 준비가 부족하다면 의대 입학 정원을 조정하는 대신 의사들이 하는 업무도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 의사그룹과 대체 및 보완 관계를 갖고 있는 한의사와 간호사에게 그 역할을 일부 이양하는 것이다.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모두 긴급 상황을 원하거나 높은 수준의 의료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첨단 의료 장비가 환자의 몸을 스캔함으로써 병명을 보다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의사의 개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의료 장비의 역할이 매우 크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회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이익단체인 의사협회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시장진입을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의료소비자에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 것인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특히,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료파업으로 인해 겪는 불안과 고통은 매우 크다. 의료파업만이 능사가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파업 보다는 사회적 수요에 맞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무엇인지,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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