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여운 것들'...창조물 벨라, 자신의 삶을 창조하다
영화 '가여운 것들'...창조물 벨라, 자신의 삶을 창조하다
  • 김민주
  • 승인 2024.03.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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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과학자가 탄생시킨 피조물
소유물 되기 거부하며 삶 개척
주체적으로 세상을 탐닉하며
점차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
외국 소설 프랑켄슈타인 재해석
영화를 통해 철학적 질문 던져
주인공 엠마스톤 놀라운 연기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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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여운 것들’ 스킬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한 임산부가 강으로 몸을 던진다. 일그러진 흉터로 얼굴이 뒤덮인 과학자 ‘갓윈 벡스터’(윌렘 대포)는 금방 숨이 멎은 그녀에게 태아의 뇌를 삽입해 실험체인 ‘벨라 벡스터’(엠마스톤)를 만들어낸다. 엄마의 육체에 태아의 영혼이 깃든 벨라를 갓윈은 자신의 분신이자 자식처럼 살뜰히 챙긴다.

어른의 몸을 한 갓난아이 벨라는 갓윈의 체계적인 보살핌과 교육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눈에 띄게 빠르게 성장하는 벨라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자신의 제자 ‘맥스’(라미 유세프)를 불러 벨라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달라고 부탁한다. 평소 존경하던 갓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맥스는 벨라의 옆에서 그녀와 동고동락하며 가까워진다. 아름답고 성숙한 외모에 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내면을 가진 벨라의 매력에 맥스는 점점 빠져든다. 결국 벨라를 사랑하게 된 맥스는 갓윈의 허락하에 그녀와 약혼을 하기로 한다.

날이 갈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늘어가면서 벨라는 혼자만의 독립을 꿈꾼다. 그런 그녀에게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은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해 보자고 제안한다. 새로운 경험에 목말랐던 벨라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과 새롭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본능에만 충실했던 벨라는 점차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하며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간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가여운 것들’은 스코틀랜드 소설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지난해 열린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그동안 남성의 형체로 그려졌던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여성인 ‘벨라’로 표현해냈다.

벨라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글로 배우지 못했던 ‘진짜 세상’을 알아간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이 성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건 악마적인 것이라고 치부하며 여성의 도덕성을 강조했지만 상반되게도 역사적으로 가장 방탕한 시대로 여겨진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기 전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순수한 생명체의 영혼을 품고 있는 벨라는 자신의 신체를 보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본능에 충실한 벨라를 두고 남자들은 부도덕하다며 손가락질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는다.

갓윈의 집에 갇혀있을 때는 무미건조한 흑백이었던 세상은 벨라가 세상으로 나가면서 점차 다채로운 색의 화려한 컬러 화면으로 변한다. 어안 렌즈(물고기의 눈처럼 가운데가 볼록해 사물을 둥글게 왜곡해서 표현하는 렌즈)와 광각 렌즈를 통해 벨라와 그를 둘러싼 기괴한 세계를 극도로 왜곡해서 보여줬던 영화는 벨라의 성장과 함께 점차 정상적인 프레임으로 바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벨라를 끊임없이 속박하며 뭔가를 가르치려 한다. 아버지 격인 갓윈은 바깥은 너무 위험하다며 벨라를 집에 가두다시피 하고 덩컨은 그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극 후반에 이르면 벨라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잘못된 지점을 지적하며 남자들의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삶을 개척한다.

특히 유람선을 타고 파리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벨라와 덩컨의 역전된 관계는 큰 웃음을 유발한다. 권위 의식과 자기애에 빠져 벨라를 강압하려고 하던 덩컨이 질투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존심을 내던지고 벨라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통쾌함까지 느끼게 한다. 영화 제목인 ‘가여운 것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기 몸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결국 ‘나는 누구였는가’를 생각하며 성장하는 벨라의 솔직함은 귀엽고 매력적이다. 왜 남자들이 벨라를 사랑하게 되는지를 공감하게 된다. 이런 벨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연기는 어떤 극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대단하다. 영화 초반의 그녀와 후반의 그녀는 걸음걸이부터 말투, 표정, 자세와 동작이 달라져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엠마 스톤은 외형적으로 변해가는 벨라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동시에 벨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영화를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최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아마 ‘가여운 것들’은 당분간 엠마 스톤의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의 연기로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윌렘 대포와 마크 러팔로의 뛰어난 연기 또한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괴짜 과학자 갓윈을 연기한 윌렘 대포는 등장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어벤져스’ 헐크로 진지하고 고뇌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마크 러팔로가 바람둥이에 찌질한 사기꾼을 연기하면서 주는 재치는 웃음을 자아내며 잔뜩 힘이 들어간 영화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초반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보였던 벨라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해부하며 파헤친다. 그렇게 마지막에 이르러 ‘벨라’로 온전히 재구성된 자신과 마주한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덩컨을 비롯해 벨라를 억압하고 소유하고 대상화했던 남성들의 대조를 그린다. 벨라는 이 과정을 통해 욕망에 기저에 깔린 실체를 알았고 자신은 욕망만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신체와 정신의 동기화를 이뤄냈다. 그렇다면 사실 ‘가여운 것들’은 누구였을까. 벨라를 가엽게 바라보던 우리 모두가 사실은 진짜 가여운 사람들일지 모른다. 감독이 던지는 질문에 이제는 관객이 답할 차례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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