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갤러리] stand mute(묵비권을 행하다)
[대구갤러리] stand mute(묵비권을 행하다)
  • 승인 2024.03.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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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acrylic on canvas


작가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되었을 때 즈음 나는 예술가로서 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작가노트의 가장 첫줄에는 "예술가는 지진계와 같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누구보다 더 예민한 감각으로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신호들을 알려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일련의 작업들은 'stand mute(묵비권을 행하다)'라는 이름을 가진 초상들이다. 예술가는 항상 역사를 마주하고 어떤 주제나 개념을 삼든 당대의 맥락과 과거를 탐구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작품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인물의 형태와 색채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공기를 전하는, 삶의 경계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속에서 나는 종종 세상을 내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행복하게 하고자하는 갈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초상으로 풀어 내다보니 아무래도 나의 작업들을 모두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지역의 TV 아나운서가 "조금은 무섭지만 강렬한…" 이라고 전시소개를 시작한적이 있을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강열하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미적 판단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아름답거나 혹은 그 반대로 이야기하는 경우 그 모든 말들은 미적 대상에 대한 주관적 원리로서의 판단을 의미한다. 작품은 작가의 사유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나는 지진계처럼 변화의 신호들을 화면에 담아 작품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되도록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주석을 추가하지 않는 편이다. 대신, 작품을 통해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서로 다른 의미로 읽어내기를 원한다. 최근 작업들은 독일과 중국 레지던스를 다녀오며 작품의 소재가 사람에서 자연으로 넘어갔다. 지진계라는 역할에 몰두하던 그 장소를 떠나니, 변화에 대한 새로운 기대로 다시 나라는 사람이 보였고 무거웠던 작업들이 조금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인물이 개인적이고 풍경이 사회적일 것 같지만 나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되었다. 자연을, 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 산과 감정을 같이하며 나의 감정이 공간을 관통해 풍경이 내가 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내게 어떤 작업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쉽게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혹자는 현대예술가가 구시대적인 표현주의를 왜 언급하냐고 반문하지만, 표현주의는 흔히 잘 닦여진 길로만 가는 것이 아닌 정해지지 않은 길, 망망대해를 내 마음대로 헤쳐 나가는 작업이라는 점이 나의 작업의 방향과 결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내가 속한 사회나 환경이 아닌 나의 개인적인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조금은 이기적인(?) 작업을 이어가 보고자 한다.

정연주 작가
※ 정연주 작가는 갤러리 문101과 고흥 도화원미술관 등에서 10회의 개인전과 국내와 중국, 이탈리아 등에서 20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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