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하목정 마루에 올라
<대구논단> 하목정 마루에 올라
  • 승인 2011.10.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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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달성군 하빈면의 하빈(河濱)은 `물 하(河), 물 빈번할 빈(濱)’인 만큼 물이 넉넉하기도 하였지만 여름에는 홍수도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일상적인 물의 정경은 한없는 안정감과 여유로움을 주는 만큼 사람들은 강변을 따라 아름다운 정자를 지었으니 하산리에 있는 하목정(霞鶩亭)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서면 의병대장이며, 원종공신인 낙포 이종문(洛浦 李宗文) 현감이 1604년(선조 37년)에 창건하였다.

하목정이라는 이름에는 우선 아름다운 운치가 들어있다. 하목(霞鶩)은 당(唐)나라 대문장가 왕발(王勃)이 쓴 등왕각서(騰王閣序)라는 글에 나오는 `지는 노을이 외로운 따오기와 더불어 날고 있구나(落霞 與孤鶩齊飛)’라는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목정은 남향이지만 잠시 서쪽 문을 열면 낙동강에 노을이 지는 모습과 그 노을 속을 줄지어 날아가는 물새들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니 이 글귀의 운치와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 들러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은 이곳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겹친 호수 곱게 깔려 두 용(龍) 비긴 듯/ 먼 들판 쪽잔 산이 그림 같아라.// 새벽안개 자욱이 물가를 적시고/ 석양빛이 물결 타고 흘러 퍼지네.// 서산의 가랑 배에 발 속 서늘해/ 남포의 지는 놀에 새 등 밝아라.// 애닯구나 왕자안(王子安)의 글도 못미처/ 경치 잡고 한잔 술에 마음 부치네.//

이밖에도 대청 벽에는 임금이 내린 현판과 김명석(金命錫)과 남용익(南龍翼), 김택영(金澤榮) 등 모두 29명의 시액(詩額)이 이곳 후손인 하옹 이익필(霞翁 李益馝)이 지은 하목당 16경 시(詩)와 더불어 걸려 있어 이곳에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들렀으며, 또한 이곳을 찬탄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하옹은 낙포의 고손자로서 영조(英祖) 때, 이인좌 난에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이 되었으므로 불천위에 모셔진 분으로 하목정 내 사당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하옹이 노래한 하목당 16경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저녁놀이 외로이 나는 따오기, 맑은 공기 밝은 달, 먼 포구를 찾아드는 돛배, 먼 교외에서 들리는 목동들의 피리소리, 가야산과 금오산의 아름다운 경치, 안개 낀 비슬산과 구봉에 지는 해, 푸른 물결 출렁이는 강가를 따라 길게 뻗은 깨끗한 모래, 동호(東湖)의 연밥따기, 형암(兄菴) 아래에서의 낚시 모습, 아름다운 단풍 아래에서 물고기를 굽는 풍경, 유천에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관진(官津)나루를 오가는 나그네의 모습, 소촌(小村)의 가랑비.

다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곳이 아름다운 우정이 깃들어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인조(仁祖)가 임금이 되기 전 세자 시절에 유람을 다니다가 강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이곳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낙포의 맏아들인 이지영(李之英)에게 인조가 물었다. “그대의 하목정은 이렇게 명승지에 있는데 부연(附椽: 긴 서까래 끝에 덧붙여 높이 솟게 한 서까래)을 달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네, 사가(私家)에서는 감히 부연을 달 수 없습니다.” “이제 이곳은 여느 사가와는 다르다 할 수 있다.”
“황공하옵니다. 이후로는 감히 거처하지 않겠습니다.” “아니다. 거처를 폐하지 말고 이 표적을 남겨두라.”

이리하여 현판 글씨를 써 주었다는 것이다. 군왕과 신하의 따스한 정성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우리 둘레의 문화유산 속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찾아내고 그것을 생활화하며 즐길 때에 우리들의 마음도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고귀한 우리 얼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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