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무모한 짝사랑
<대구논단> 무모한 짝사랑
  • 승인 2011.10.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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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민 건 대구대 영어교육과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 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미간이 찡그려지고 코끝이 찡하게 다가오는 비린내와, 잠시잠깐 들린 이방인의 낯선 시선에 아랑 곳 않고, 손가락 지문이 무뎌질 때까지 그물을 걷어 올리는 한 노파에게 풍경이 머무는 어느 부둣가에서, 자라나는 강아지풀처럼 약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나에게 시(詩)로 다가왔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이들의 육체노동은 어쩌면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점점 더 자본으로부터 멀어지는 잉여의 움직임이겠지만, 이들은`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언제고 깨질 것 같지만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 보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최근 스웨덴 출신의 토마스 트란스뢰메르 시인이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주 오랜만에 시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노벨상이 발표되던 순간 한국의 언론은 수상소식과 함께 한국의 고은 시인을 주목했다. 매번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시기에 한국 언론은 오히려 `왜 한국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 집중한다. 그 이유로 이들은 한국문학계의 영어번역의 문제점과 수준 높은 번역과 역량이 있는 번역가 양성이 시급함을 지적한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무모한 `짝사랑’이 집단적 문학의식의 열등의식으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한국적 배경과 정서를 가지고 한국어로 창작을 하는 우수한 작가에게 이 상이 주어지기는 어렵고 그 어떤 국내 작가에게 주어진다 해도 이것을 한국 문학의 진정한 세계화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폭약장사로 번 돈’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집착은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가공 포장해서 서구 소비자들에게 팔리는 물건처럼 보인다.

1964년,“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영예를 거부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만 독자들과 소통해야한다. 그 어떤 영예를 받게 되면 독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게 된다”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과감히 거부한 잘 폴 샤르트르가 더 작가다운 자세가 아닌가 하는 도덕적인 문제를 차지해 두고라도, 수상 결정을 좌우하는 서구의`고급’심사위원들을 위해 우리의 고유의 지역적 정서를 포기하고, 서구가 만들어놓은 문학적`보편성’으로 한국문학만이 가지는 매혹적인 `이질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난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백석 <희 밤>)라는 시구에서 배어나오는 실존주의적 경험이나 `한’(恨)의 개념이, 문화나 언어적으로 부재한 서구의 독자들에게는, 시 혹은 문학의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무리 이미 빡 피 한 방울 안 나는 상복씨이지만/ 마침 빌린 연장 가지고 온/ 사촌 상만이 앉혀/ 찐 홍어 두어 점에/ 술 한 잔 큰 인심 쓴다/ 이 강산 아름다운지고 살 만한지고”(고은 <홍어 한 마리>)라는 토속적 풍경이, 이웃과 가족관계가 실용주의와 합리성 그리고 종교로 해석되는 서구인들에게는, 약한 이들에게 묻어나는`보편적`정’(情)의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가난의 체취가 묻은 작품을 부자가 좋아할 리는 없다. 우리가 몸을 굽혀가면서 저들의 기호를 의식하고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까운 우리의 독자들이, 가난한 이웃들이 우리 글로 쓰인 우리의 이야기를 읽고 울고 웃으며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한국문학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고 노벨 문학상 보다 더욱 빛나는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닌가.

톨스토이와 막심 고리끼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세계문학에서 외면 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오는 길 44년 늘 나는 어설픈 농부였고 새였고 울음의 무당인가 하였다. 그러는 동안 언어가 나의 종교였다’고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말한 고은 시인이 어두운 시대와 맞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의식으로 약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 한, 한국문학의 가치를 서구문학에 견 줄 필요는 없다. 문학적 가치는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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