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정 情 Jeong
<대구논단> 정 情 Jeong
  • 승인 2011.10.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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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효 진 스피치 컨설턴트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해 한·미 외교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것도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3년 만에 국빈 방문함으로써 가지는 의미는 더욱 컸다. 이번 국빈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두 정상이 한·미 동맹을 각각 상대국 언어로 묘사하고 친밀함을 표현한 부분이다.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핵심을 한국말로 `정(情)’을 언급하며 한미 동맹의 끈끈함을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핵심은 아주 한국적인 개념인 `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번역되는 건 아니지만, 이 개념은 깊은 애정과 쉽게 끊어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다”라며 `정’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까지 내놨다. 그것도 `정’이란 단어를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여러 차례 말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평소의 관심을 표현했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에서 한미동맹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60여년 한·미 동반자 관계를 나타내는 한국어 표현이 있다. 바로 `같이 갑시다’이고 영어로는 `We go together’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We’라고 하는 `우리’는 우리나라의 `정’이라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얼굴을 가리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 생각, 행동 등을 보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고유의 심리적 단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정(情). 이 `정’을 빼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심층적인 한국인의 감정이다. 또한, 대인관계에서 가까움과 밀착의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속성이기도 한데, 미국인의 대인거리가 호감이나 친밀도로 표현된다면, 한국인의 대인밀착은 `정’의 강도로 표현될 수 있다. 그것도 서로 `남남’이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를 느낄 때 친밀감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우리’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어떤 개인이 우리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접촉 과정에서 `정’이 생겨나고 `우리’라는 범주가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정’을 만들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정’은 달아나게 된다. 이처럼 `정’은 의지성이 없는 그래서, 상대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정’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겨난 특정한 마음의 상태이기에 서로가 직접 파악하기는 어렵다. `정’은 추론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정’을 추론하는 데는 그동안의 행동적 `정’의 단서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적 `정’의 단서가 사용된다. 보통, 구체적인 사건의 맥락 속에서 고마움과 따뜻함, 가까움 등과 같은 `정’과 관련된 단서를 통해 `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과 유사한 현상인 `친절’의 경우는 ’정’과는 달리 의도성을 가진다. 의도성이 높을수록 더욱 친절한 행동으로 지각된다. 또한, 친절에는 비교적 객관적인 외적인 행동단서가 있다. 그럼으로써 친절유무를 그 단서를 통해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친절은 특정인에 대한 태도나 의도성의 문제이고, `정(情)’은 태도나 의도성이 아니라 특정한 자생적 마음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자생적 마음의 상황이란, 의지나 인식이 감정에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속에서 저절로 `정’이 솟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통해 `정’이라는 것이 한국외교 활동에 훌륭한 외교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 있어 의도성이 짙은 친절 외교에만 그치진 않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물론 한미 관계가 우선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나라들이 있다. 그들 나라와 그동안 정을 만들려고 노력만 하다 정이 달아나진 않았는지, 몇 번의 접촉 과정으로 충분한 교감이 이뤄졌다고 단정 내리진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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