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다시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이다
<달구벌 아침> 다시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이다
  • 승인 2012.10.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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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대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어머니가 데워놓은 목욕물은 정말 뜨거웠다. 발을 담갔다가 깜짝 놀라 꺼냈더니 살갗이 금방 발갛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도 어머니는 내 몸을 끌어다 목욕통 속에 눌러 앉혔다. 뜨겁다며 소리를 질렀다가 등짝에 불이 나도록 손바닥으로 한 대 철썩 맞았다. 내가 보고 느끼기엔 발갛게 익은 살갗을 어머니는 때를 벗겨내야 한다면서 때밀이 수건으로 박박 문질러버렸다. 울면서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 쯤 되어서야 목욕물은 적당하게 미지근해져 있었다.

어릴 때 시골 마을에는 목욕탕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부엌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목욕통으로 옮겨 담아놓고 그 안에서 목욕을 했다. 하나의 수도꼭지에서 온수와 냉수가 원하는 대로 나와 목욕물의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때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행여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되어 뜨거운 물에 목욕을 시켰을 것이지만 그 때 억지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야 했던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아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 새 자전거를 가지게 된 아들은 마냥 좋아하며 신천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그러나 막상 올라타 보더니 달리기는커녕 균형을 잡지도 못하고 자전거의 높이 자체를 무서워했다. 결국 자전거를 타기 싫다고 한다. 세발자전거만 타던 아이가 어린이용이라고는 하지만 보조바퀴도 없는 자전거를 바로 타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아들이 사내답지 않게 쉽게 포기하고 별 것 아닌 것을 두려워한다고 답답하게 여긴 아내는 아들을 다그쳐 기어코 자전거에 다시 태웠다. 아들은 자전거보다 엄마가 더 무서워 울면서 자전거를 타다가 철조망 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모두 놀라며 소동은 끝났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들은 그 후로 한동안 자전거에 손을 대기도 싫어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은 다행히 자전거를 잘 타고 즐긴다.

언젠가 인체를 해부해 놓은 실물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모형이 아니라 살아있던 사람을 해부하여 전시해 두고 있었다. 벗겨낸 피부, 살점을 발라놓은 뼈대, 바싹 말려 육포같이 된 근육, 분리하여 끄집어낸 내장, 산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 영아의 두개골, 심지어 사람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로로 얇게 켜서 단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끔찍한 실물들이 끝도 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 안에서 여러 엄마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쉴 새 없이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 있던 한 여자아이가 무섭다고 울면서 보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의사가 되려면 이런 것부터 보고 배워야 한다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둘의 실랑이는 한참 이어졌다.

엄마들은 모두 다 자녀를 사랑하고 멋지게 키워보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아이를 뜨거운 물에 목욕시키고, 겁내지만 자전거에 태우고, 무서워하더라도 인체 해부물로 가르친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으로 베풀고 다가가더라도 아이의 자발성을 끌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억압이 될 수 있다.

간디학교를 세운 양희규 교장은 우리 교육환경을 향해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을 강조하고 실천해 왔다. 오랫동안 경쟁과 효율을 바탕으로 성장과 성공 신화의 열매를 넘치게 거둔 우리에게는 다소 헐렁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처절한 말이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도 흔하게 된 지금, `사랑’은 뭔가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자발성은’ 자칫 방종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육환경이 이토록 치열하기에 치열한 그만큼 절실한 것이 다시 사랑과 자발성이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로 말미암은 배려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사랑이 진정한 자발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이 교육이다.

돌아보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억압해 온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배려해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던 일들이 생각나서 부끄러워진다. 아이가 제 나름대로 잘 커주기를 바랐던 마음보다 뭐라도 옆 집 아이보다 더 빨리, 더 잘하기를 바랐던 속내가 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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