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삶을 꾸려 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식
<팔공시론>삶을 꾸려 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식
  • 승인 2009.09.27 14: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규성 (논설위원)

옛날 어떤 곳에 한 채의 시골집이 있었다. 이 시골집의 주인은 본디 농부였지만, 마침 집이 큰 길 옆에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농사를 그만두고 지나가는 여행객을 상대로 여관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점차 단골손님도 생기게 되고, 수입도 그런대로 괜찮아서 지금은 농사보다 여관업이 본업처럼 되어 있었다.

이 시골집에는 농부와 더불어 개와 닭과 매가 살고 있었다. 개는 집을 지키고, 닭은 알을 낳고, 매는 이 여관의 명물이 된 꿩 요리를 위해 꿩을 사냥하고 있었다. 각자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로 이 세 마리의 동물들이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누가 주인으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소중한 대접을 받는지, 누가 가장 자유로운지에 대한 대화였다.
개가 말했다.

“그야 두말할 필요가 없지. 주인님에게서 가장 귀여움을 받고 있는 건 바로 나지. 우리 개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친구로서 살아왔지. 우리와 인간들 간의 신뢰관계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을 만큼 강하지. 보시다시피, 나도 이렇게 매일 맛있는 밥을 맘껏 먹으면서, 늘 주인님 곁에 있잖아. 게다가 너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지만, 집안 난로 옆에 앉아 주인님의 귀한 손님까지 맞이하잖아.”

개가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자, 닭이 반박했다. “그건 자유와 다른 거야. 그건 길들려진 거야. 그 증거로 넌 언제나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잖아. 부르면 꼬리를 흔들고 달려가고, 기다려 하면 그렇게 좋아하는 뼈다귀도 손대지 않고 침을 흘리며 기다리잖아. 거기에 비하면 나는 의연하지. 물론 주는 모이는 매일 먹지만 그건 우리가 낳아주는 알에 대한 정당한 대가지. 우리는 떳떳한 닭으로서 인간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지.”

그 말을 듣고 그 때까지 듣고만 있던 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가소롭기 짝이 없군. 날지도 못하는 새가 자립이니 뭐니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야. 새라는 건 말이야, 나처럼 푸른 하늘을 우아하게 날 수 있어야 한 다구. 너처럼 인간에게 찰싹 붙어, 하늘을 나는 것을 잊은 새에게 무슨 자유를 애기할 자격이 있겠니. 쫓아가면 종종 달아나기에 바쁜 너에게 어떻게 인간과 대등함을 말할 권리가 있겠니. 대등함이란 나처럼 날카로운 부리에 강력한 발톱, 힘찬 날개를 가진 나에게나 가능하지. 그리고 내 눈을 봐. 주인의 얼굴빛만 살피는 비굴한 개와는 차원이 달라.”

매가 이렇게 말하자, 닭과 개는 어쩐지 쓸쓸하고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까지 개는 자신이 주인에게서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신뢰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닭은 닭대로 개와는 달리 자기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매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그 말도 맞다 싶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주인이 매를 대하는 태도에서 자신들과는 달리 일종의 외경심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너야말로 새의 왕이야.” 주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는 지금까지 자신이 바라온 기쁨이 도대체 무엇이었나 생각했고, 또 닭은 자신이 자랑해 온 자존심이 도대체 얼마 만큼이었나 생각했다. 그런 개와 닭의 눈에 이번에는 매의 발목과 횃대를 연결한 끈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순간 개와 닭은 거의 동시에 매에게 말했다. “아니, 끈으로 묶여있다는 것은.....넌 날고 싶을 때 날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날 수 없잖아. 물론 사냥을 할 때는 족쇄를 풀겠지만, 결국 사냥이 끝나고 나면, 다시 횃대에 묶이잖아. 사냥감은 네가 잡은 것이니 당연히 네가 가지고 너 가고 싶은 대로 날아가 버리면 되잖아.”

새끼 때부터 매사냥용으로 키워져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매는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그래 어째서일까? 나는 왜 시키는 대로 사냥을 하고, 어째서 아무런 의문도 없이 이렇게 돌아와 묶여있는 것일까?” 평소 의연한 태도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매는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그때 이 세 동물의 눈에 여관손님에게 항의를 받고 연신 굽실대는 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