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명대로 살기 위해서는?
제 명대로 살기 위해서는?
  • 승인 2019.01.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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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의사 노릇 하기 힘든 세상이다. 지난해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중 환자가 휘두른 칼에 맞아 의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응급실 폭력 사건이 하나 둘이 아니더니 결국 진료현장에서 살해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5월에는 경기도의 한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은 환자가 아나피락시스 쇼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시술을 한 한의사의 요청으로 같은 층의 가정의학과 의사가 응급조치를 하였으나 결국 사망하였고, 유족들이 한의사를 고소하면서 응급처치를 하며 도와준 가정의학과 의사까지 9억원대의 민사소송을 당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려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보거나 환자를 치료하다가 폭행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위급한 상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진료현장에서는 회의에 빠진 의사들의 좌절감이 깊다. 남을 돕는 이웃,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의사가 없어져 가고, 나만 생각하고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추구하면서 남이야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고 행동하는 방관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을 사단설(四端說)로 설명하며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그 첫째로 꼽았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인’ 이야기도 사람의 선한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다치자 유대인들은 이 다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고 그냥 지나갔지만, 평소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 이를 보고 도와주었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착한 사마리아인’에 비유하고 이 같은 선의의 구조행위를 법으로 강제하거나 보호해 주는 법률 조항을 ‘착한 사마리아인 법(The Good Samaritan law)’이라고 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하는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아 씁쓸하기만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측은지심의 본고장 중국에서 2006년에 있었던 일이다. 한 노인이 사람들에 치여 넘어지자 근처를 지나던 행인이 노인을 일으켜 세우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도움을 준 행인은 오히려 노인의 가족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하여 4만 5천여 위안을 지급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비에관션스(別管閑事, 쓸데없이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마라)’가 사회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결국 보다 못한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중국판 ‘착한 사마리아인 법’인 ‘하오런(好人)법’을 만들 정도이니, 삶이 팍팍한 건 지구촌 어디서나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다행히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올해부터 응급의료법이 개정되어 응급실에서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되었다.

그동안 의료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내용으로, 불만이 있으면 주먹이 앞서는 풍토가 만연한 현실을 보면 진작 개정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응급실에 한정되어 적용되므로 전 의료기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진료실 폭력은 심각한 범죄임을 계속 홍보하여 건전한 시민의식이 정착되도록 범사회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개인의 도덕적·윤리적 행위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제정 또한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선의의 행동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고 법으로 강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않은가. 따뜻한 정이 넘치던 우리 사회에 오불관언(吾不關焉, 남의 일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뜻)의 풍토가 굳어 간다.

급한 환자가 발생되어도 도와주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소송 당한다. 진료현장에서는 의료진 폭행이 수시로 일어나고 심지어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나설 것이며, 의사로서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진료실을 지킬 것인가.

이런 험난한 사회에서 제명대로 살려면 남의 일에 나서지 말고, 진료실에 호신도구 갖추고 무술이라도 배워야 할 판이다. 의사 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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