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종말을 생각하며
쪽빛 종말을 생각하며
  • 승인 2020.06.1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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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나는 왜
괜찮다, 괜찮다
자꾸만 전에 없이 너그러워지는 것일까.
이러다가 정녕 끝장을 보고야 말려는지
수상쩍은 구름은 낮게 깔리고
아직도 젊은 날의 미열에 떠서
이런 날이면 나는 왜
한 점 아편꽃을 먹은 듯
쪽빛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일까.
길 가다 처마 밑에서
똘물처럼 흐르는 빗물 소리를 듣든지
비를 긋는 창안에서
비를 맞는 창밖을 바라보면
창세의 씨앗 속인가,
세상은 참 조고만 쪽빛.
육신은 젖은 솜처럼 가라앉고
살아 오르던 풀기도 눅눅해져서,
비 오는 날이면 나는 왜
쪽빛 바다 쪽빛 하늘의
쪽빛으로 헝클어지는
한 종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이향아 = 1938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에 현대문학에 <찻잔>으로 등단을 하면서 시인활동을 시작했다.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63) 서울 서대문중학교(72), 성동여자고등학교(76), 영등포여자고등학교(81), 경희대학교(83),호남대학교(98) 등에서 교단을 지키면서 수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 제10회 광주문학상(97),제14회 윤동주 문학상(98),제40회 한국문학상(03),제2회 미당시맥상(10),제5회 신석정문학상(18).

<해설> 살아있는 것은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시간의 흔적이 쌓여진 기억의 고집은 스스로를 형상화하여 전설이 된다. 전설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가 되고 삶은 끊임없이 그 장치들로 얽히는 과정 같다. ‘나’라는 개별 주체는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서로를 비추는 거대한 ‘인드라망’이 투영하고 있는 세계이다. 나는 나 자신이며 다른 누구인 동시에 모두인 존재다. 인간은 생각 안에 머물러 있다. 삶은 자신을 긍정함으로써 성립된다. 자기를 긍정할 수 없는 삶은 모순에 불과하다. 사람은 스스로 옳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자기긍정의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주체의 모든 행위를 정당하게 여긴다. 선의의 존재라고 여기는 ‘나’는 언제나 나를 지지한다.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고,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을 드러낼 수 없다. 인간의 모순중 하나는, 자신은 정당하다고 여기면서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옳다’라는 관념은 사실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어, 숱한 차별과 죽임, 독선과 아집, 편견과 벽을 만들기도 한다. 삶이 비극이 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는 세계다. 긍정이 부정을 도출하고 선은 악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 환상 속에 객관적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 알고 있는 사실, 보이는 모습, 모르는 거짓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 진실을 안들, 또 모른들 즐겁게 살면 된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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