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소유
존재와 소유
  • 승인 2020.1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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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박사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 스님이 최근 한 방송에서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 도심 주택에서의 일상을 공개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소박한 승려의 삶을 살고 있으니라 생각한 그의 삶이 ‘무소유’가 아니라 ‘풀소유’라는 것이다. 평소 그 분의 글과 말에 많은 공감을 느꼈던 나도 실망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인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 놓았더니 그런 것을 이제야 알았냐며 참 순진하다는 핀잔을 들었다.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종교인들은 이미 연예인이지 구도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명저,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의 생존 양식을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소유라는 삶의 방식에서는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유능한 인간으로 인정받는다. 때문에 인간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오히려 소유를 감소시키는 정도만큼 인간의 존재양식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땅한 생존방식이 소유인가 존재인가를 묻는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자택일적 선택을 촉구하는 그의 질문에는 강한 호소력도 묻어있다. 이에 비해 “존재와 소유”라는 말은 비록 호소력이 떨어질지라도 ‘존재’와 ‘소유’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부각한다. 아울러 존재는 소유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효과도 있다.

인간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에리히 프롬’은 소유의 방식이 아닌 존재의 방식에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유를 감소시키는 존재 방식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과도한 요구이다. 내가 만난 많은 종교인들 중 더 적은 소유를 통해 행복을 누리고 있는 분들은 극히 적었다. 그분들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소유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어떤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자신의 삶이 참으로 만족스러우며 지금의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강의가 끝나고 한 분이 “만약 사회적인 신분이 교수가 아니었어도 여전히 지금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시냐”는 질문을 했다. 질문을 받은 교수는 잠시 당혹해 하다가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질문자는 “그렇다면 교수님의 행복은 교수라는 사회적 신분에서 온 것인데 그런 사회적 신분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라고 다시 물었다.

아쉽게도 그 분은 그 질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교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종교인이나 교수라 해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를 배제한 존재만의 행복은 너무 이상적이다. 차라리 존재와 소유의 적절한 균형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존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행복의 근원인 것은 분명하다. 나의 존재를 비롯한 타인의 존재, 그리고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의 존재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존재의 기쁨 외에 소유의 기쁨도 무시할 수 없다. 소유를 획득하는 기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소비의 기쁨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증식의 기쁨은 또 어떤가? 불어나는 재산은 성장하는 자식들만큼이나 큰 흥분을 안겨준다. 더구나 소유의 나눔에서 오는 이타적인 기쁨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행복은 존재의 기쁨과 소유의 기쁨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경험할 수 있다. 그 균형은 존재의 기쁨으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무한 소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다.

무한 소유의 탐욕을 적절히 절제할 수 있다면, 우리가 열심히 일하여 얻은 소득, 지혜로운 투자를 통한 재산 증식을 즐거워하며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웃을 위해 자기의 소유를 나누는 기쁨은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

혹자는 더 많은 소유를 확보하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무소유 혹은 존재에만 행복이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소유는 존재의 기쁨으로 탐욕을 절제하는 자에게 더 큰 행복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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