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철길이 겹한 강마을 저녁답은
서산에 사위어가는 불티 한 점 댕겨와서
남정네 장작 지피는 아궁이에서 시작된다
장작불 잘 피우는 건 사내들의 자존심
무덤덤한 문을 열고 불길을 보내지만
여인네 무쇠 달밑*은 좀체 달지 않는다
덤벙대면 꺼지는 불, 탑을 쌓듯 몸을 태워
구들장 깊은 곳을 붉은 혀가 빨려들면
그제야 불타는 뼈를 아궁이가 깨문다
젖꽃판 달아올라 소댕꼭지 곧추서고
땀방울 송글송글, 가슴 팽팽 부풀면
뚜껑이 들척거리며 기적소리 들린다
강과 철길이 겹한 강마을 남성男性들은
산자락 끌어 덮은 따끈한 온돌에서
밤마다 기적소리에 장작불로 기립한다
*달밑:솥의 아래쪽 불룩한 배 부분
◇서태수=《시조문학》천료, 《문학도시》 수필, <한국교육신문> 수필 당선, 수필집 『조선낫에 벼린 수필』 외, 낙동강 연작시조집 『강이 쓰는 시』 외, 평론집『작가 속마음 엿보기』, 낙동강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외.
<해설> 강바람이 매서운 겨울밤, 뜨끈한 온돌방의 정취가 물씬하다. 요즘 세상에선 쉽게 느끼기 힘든 따뜻함과 포근한 감정이 생기는 시골. 온돌을 데우기 위한 군불 지피기는 아파트 세대에서는 생소한 부분이겠지만 온돌 세대는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 표현이라 하겠다. 자칫 성시 같은 오해가 들지만, 아궁이 불 지피는 그림이 눈앞에 아른하다. 절묘한 비유가 참 따뜻하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