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가 김희은 “무대·의상 영향 없이 움직임만으로 감동 주고파”
한국무용가 김희은 “무대·의상 영향 없이 움직임만으로 감동 주고파”
  • 황인옥
  • 승인 2021.01.20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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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KBS 국악대경연 금상
도전 가능한 나이 막바지 도전
우아한 한영숙류 살풀이 선봬
恨·樂 동시에 표현 ‘깊은 인상’
마라톤 같은 춤
고교 재학 시절 손혜영에 사사
승무·살풀이·태평무 등 섭렵
“인생 경험 쌓이며 내 춤도 성장”
한국무용가-김희은
2020년 KBS 국악대경연에서 한영숙류 살품이품으로 무용부문 금상을 수상한 한국무용가 김희은. 그녀는 ‘마음을 울리는 춤꾼’으로 한국무용계에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가수는 노래, 배우는 연기로 감동을 전한다. 노래나 연기는 ‘언어’라는 1차 재료를 몸에 실어 표현한다. 말하자면 ‘언어’와 ‘몸’의 상호작용으로 노래와 연기의 형식을 완성하는 장르다. 하지만 무용은 다르다. 1차 재료인 ‘언어’가 배제되고, 순수하게 ‘몸짓’으로만 감정을 전달한다. 이럴 경우 기쁘거나 즐거운 감정은 얼굴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을 할 수 있지만 ‘한(恨)’이라는 정서는 당혹스러워진다. 지극히 개별적 체험이나 이론을 통한 간접 체험에 의존해야 하는데, 두 경우 모두 개인적 감수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무용가 김희은은 ‘한(恨)’을 춤으로 표현하는 제대로 된 춤꾼임을 증명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제30회 KBS 국악대경연에서 한영숙류 살풀이춤으로 무용부문 금상의 영광을 안았다. 유튜브 동영상에서 본 김희은은 새하얀 한복의 치맛자락 아래 버선발의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허공을 가르며 길게 늘어트린 흰 천의 춤사위, 만면에 번지는 슬픈 듯 기쁜 미소는 ‘한(恨)’과 ‘환희’를 동시에 춤으로 녹여내고 있었다. 그녀의 춤사위가 고요한 허공에 기운을 불어 넣을 때면 기쁨과 슬픔의 모습을 한 포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갔다. 김희은은 “KBS 국악대경연에서 한영숙류 살풀이춤 특유의 ‘희노애락’을 한 호흡에 담백하게 담아내는데 혼신을 다했다”고 밝혔다.

국악계의 3대 콩쿨 중 하나라고 손꼽히는 KBS국악대경연은 젊은 국악인의 등용문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특히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경연대회로 알려져 있다. 역대 수상자들 중 김희은을 포함해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수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서울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이 이름을 올릴 정도다.

김희은은 각종 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실력파 춤꾼이다. 2017년부터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일반부 우수상, 부산국악대전 일반부 장원, 상주전국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인부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KBS국악대경연은 지난해 첫 도전이었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어 평일에 열리는 KBS국악대경연에 참가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KBS국악대경연이 마지노선으로 정한 나이가 다가오자 ‘도전이라는 경험’조차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출전을 결심했다.

입상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대회 경험에 초점을 맞췄지만 “책임감 있는 무대”에 대한 마음은 오히려 커져갔다. 책임감에 무게가 실릴수록 연습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연습이 거듭될수록 신체적인 조건을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전에 부상당한 어깨에 통증이 시작되었고, 면역은 바닥을 쳤다. 손가락과 발가락 관절 마디마다 포진이 생겼고, 무릎통증은 심해졌다. 그때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과 스승이었다.

“저 대신 딸아이를 챙겨주시는 부모님과 하루 종일 엄마 얼굴 한 번 못보고 잠들어 있는 딸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그리고 제자들을 도와주시려고 자정까지 함께 해 주시는 스승님께 걱정 끼쳐드리지 말아야겠다는 마음도 컸어요.”

한영숙류 춤은 ‘정(靜)’, ‘중(中)’, ‘동(動)’으로 대변되는 조용하고 우아하며 단아한 춤사위를 특징으로 한다. 특히 살풀이춤은 절제된 멋과 신비함으로 한(恨)과 슬픔을 환희로 승화시키며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춤이다. 말이 쉽지 오직 표정과 몸짓만으로 희노애락을 수렴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옛 여인들이 가졌던 한(恨)의 정서를 현대의 춤꾼이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녀가 “장단과 음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누운 상태로 눈을 감아 악(樂)에만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한 호흡에 삶의 무게와 노고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음률이 울면 저도 울고 음악이 치면 제 맘도 치는 것 같았어요.”

특히 그녀가 좋은 성적을 거둔 비결로 꼽은 것은 ‘높은 집중도’였다. “박자, 호흡 조절, 유연함, 희노애락의 감정표현 등에 집중하라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정직하게 표현하려고 했고, 그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지켜가기 위해 몸과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그녀에게 금상 수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용기의 획득’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사실 그녀는 국내의 권위있는 무용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큰상을 받았지만 한 번도 자신감 있게 도전한 적은 없었다고 고백했다. 대회출전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기에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침으로서 오는 ’후회’ 때문에 매번 용기를 냈고, 큰상까지 받게 되면서 춤에 대한 발걸음은 한 발자욱씩 앞서갔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조금씩 쌓여갔다.

사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신체조건은 퍼펙트하지 못했다. 뛰어난 신장이나 우월한 미모, 큰 재능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자신의 춤을 통해 위안을 얻고 열정을 키웠기에 춤꾼으로 사는 것에 행복감이 높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행복과 감동을 전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자신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KBS국악대경연대회 참가는 바로 그 부족했던 자신감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도전을 계기로 최선 뒤에 오는 성취감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번의 값진 경험으로 헛되지 않았던 춤 공부에 대해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매일 흘리는 땀에 대한 불안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단거릴 선수를 뛰었을 만큼 체육을 좋아하고, 어릴시절 피아노를 전공하던 언니를 따라 피아노 치기에 열심이던 김희은이 춤과 인연을 처음 맺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왜소한 체격 조건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체육과 피아노 대신 한국무용과 발레를 동시에 배우기 시작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한국무용으로 좁혀졌다.

그녀의 춤이 본격화 된 것은 한국무용가 손혜영을 만나면서다. 손혜영은 ‘2012년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국내에서 알려진 실력파다. 김희은의 스승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다. “손혜영 선생님을 만나자 저나 부모님이나 만장일치로 이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을 통해 한국무용의 기본부터 재정립하게 되었고, 전통까지 만나게 되었죠.”

그녀는 전통춤의 대부인 한성준,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 그리고 한성준의 수제자 박재희(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전승된 춤을 배웠다. 주력분야는 승무, 살풀이, 태평무, 한영숙류의 원류로 만들어진 박재희류 입춤인 가인여옥이며, 이밖에도 다양한 춤들을 섭렵했다. 그녀가 현대를 사는 자신이 과거 선조들의 정서와 역사로 완성된 전통춤을 추면서 느끼는 희열로 “전통춤의 근원과 현재가 소통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호흡”을 꼽았다.

“전통춤이 정해진 동작과 호흡이 있어서 쉬울 것 같지만 섬세한 해석력과 세밀한 과학적 움직임을 이해해야 출 수 있는 어려운 춤입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제 인생 경험치가 쌓이고 그에 따라 제 춤도 어제와 달리 성장해 가는 것 같아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 같은 힘듦이 있지만 그에 따른 성취감이 높기에, 하면 할수록 행복감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전통무용과 마라톤을 하고 있는 김희은. 어떤 춤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을까? 그녀는 “노래하는 사람처럼 말하듯 춤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무대나 연습공간, 장소, 의상, 분장 상태 등 적 요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에서 오직 움직임만으로 감동을 주는 춤을 추고 싶다는 의미였다. “손끝, 호흡, 눈빛 등 온 몸으로 말하는 춤꾼, 마음을 울리는 춤꾼이 되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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