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평화 위해 비폭력 투쟁 앞장선 ‘철의 여인들’
지구촌 평화 위해 비폭력 투쟁 앞장선 ‘철의 여인들’
  • 김종현
  • 승인 2021.01.20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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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47·끝> 인권과 민주화 두 토끼 잡기
라이베리아 24대 대통령 ‘존슨 설리프’
재정부 차관으로 활동하다 사퇴
군부정권에 반기 들어 투옥되기도
민주화 운동 통해 평화적 정권 이양

노벨상-인권과민주화
인권과 민주화에 힘쓴 아프리카 여성 3인이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림 이대영

2011년 아프리카 최초여성으로 라이베리아 제24대 대통령이었던 엘런 존슨-설리프(Ellen Johnson-Sirleaf, 1938년생)와 라이베리아 비폭력 평화운동가였던 리마 로버타 보위(Leymah Roberta Gbowee, 1972년생) 그리고 예멘의 여성정치인 인권운동가, 언론인이었던 타우왁쿨 아브델살람 카르만(Tawakkol Abdel-Salam Karman, 1979년생)에게 “여성안전을 위한 비폭력 투쟁과 평화구축작업에 대한 완전참여를 위한 여성권리를 확보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먼저, 엘런 존슨-설리프는 라이베리아 몬로비아(Monrovia, Liberia)에서 태어나 1948년부터 1955년까지 대학예비학교인 서부아프리카대학에서 배우다가 17세에 결혼, 직업전선에 나갔다. 1961년 살 길과 배움을 찾아서 미국여행을 떠났고, 매디슨비즈니스대학(Madison Business College)에서 경영학(회계학) 학사학위, 콜로라도주립대학 석사학위 취득, 1971년에 하버드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Master of Public Administration)를 취득했다. 1971년 라이베리아로 귀국해 당시 윌리엄 톨버트 정부(William Tolbert’s government)에 입문하여 재정부 차관으로 1972년부터 1973년까지 ‘폭탄선언(bombshell)’연설로 유명했으며, 의지가 강해 ‘철의 여인(Iron Woman)’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국세낭비에 대한 불만으로 사퇴하고, 1979년부터 1980년 재무부장관을 맡기도 했다.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개했던 민주화운동은 i) 1980년 4월 12일 내전군벌 토착 크라인 부족(indigenous Krahn ethnic group)의 주임상사 출신, 군사쿠데타로 전임대통령을 살해한 뒤 집권한 새뮤얼 도(Samuel Doe, 1951년생)에게 반대하다가 투옥생활, ii) 1997년 내전군벌이었던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1948년생) 정권에서도 망명, 1981년 케냐 나이비아 시티은행 아프리카지점 부지점장 등으로 근무했다. 1992년 유엔 개발프로그램 아프리카담당 재정국장, 세계은행에서 근무를 했다. iii) 1997년 귀국해 부패와 전쟁에 투신, 테일러 정권에 맞서 대선에 출마 2위, 2003년 국가개혁위원회 위원장 역임, 2005년 대선에는 전직 축구선수였던 조지 웨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도 있었다. iv) 20018년까지 제24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2008년에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 2009년 찰스 테일러 정부에서 자행되었던 실정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단행했으며 민주화를 완성하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업적에 관한 자료로는 1999년 ‘재해로부터 개발까지(From Disaster to Development)’보고서, ‘생존을 위한 기본 틀: 갈등과 재난에 대한 건강, 인권, 인도주의적 지원’논문, 2002년 ‘여성, 전쟁과 평화: 여성과 평화구축, 여성역할, 무력분쟁의 영향에 대한 독립전문가들의 평가’ 등이 남아있다.
 

평화운동가 ‘리마 로버타 보위’
평화의 상징 흰 옷 입고 시위 전개
테일러 대통령 만나 반군과 협상 압박
내전종식 후에도 여권신장운동 지속

다음으로 리마 로버타 보위는 라이베리아 중부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7세에 수도 몬로비아(Monrovia)로 이주해 대학진학을 꿈꿨으나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제1차 내전이 발발했고, 난민이 되어 난민촌에서 지내다가 결혼하고 아이 어머니가 되었다. 남편의 폭력과 학대를 피해 몬로비아(Monrovia)로 되돌아와 유니세프(UNICEF)의 도움으로 i) 트라우마(trauma) 치유상담사 교육을 받고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ii) 1998년 몬로비아 마더패턴보건전문대학(Mother Patern College of Health Sciences)에 입학해 2001년 전문학사학위를 취득, ‘기독교단체 트라우마 치유 및 화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소년병사의 치유를 담당했다.‘서아프리카 평화구축네트워크(West Africa Network for Peacebuilding;WANEP)’에도 참여했으며, 2001년에 ‘평화구축 여성네트워트(Women in Peacebuilding Network : WIPNET)’을 설립해 제대로 된 역할을 추진했다. iii)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제2차 내전(2nd Civil War)이 지속되자 ‘평화를 위한 라이베리아 여성대중행동(Women of Liberia Mass Action for Peace)’을 결성해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시위를 주도했다.

그녀의 내전종식 전략은 남성이 꿈도 못 꿨던 지혜가 동원되었다. 즉 iv) 그리스도교 여성, 이슬람교여성을 규합해 생선시장 등에 평화의 상징 흰색 옷(White Color for Peace)을 입고 시위를 전개, 찰스 테일러 대통령을 만나 반군과 평화협상을 압박했고, 여성들은 남편을 대상으로 “총을 내려놓아라. 아니면 잠자리는 없다(Put down the gun. Or there is no bed).”는 동침파업(同寢罷業)을 전개했다. v) 2003년 가나(Ghana)에서 내전종식을 위한 평화협상 개최, 여성들이 회담장까지 농성을 전개해 “타결 없이, 못 나간다(Never Leave Here, Without Ending).”라는 결사의지를 표명했다. 내전종식을 마무리하고도 평화운동과 여권신장운동을 지속, vi)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라이베리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 라이베리아 여성들의 투표참여를 독려, 2005년 엘런 존슨 설리프를 대통령에 당선시켰으며, vii) 2006년 가나에 본부를 둔 ‘아프리카 여성·평화·안보 네트워크(Women Peace and Security Network-Africa;WISPEN-Africa)’를 창설했다. 2007년 미국으로 가 이스턴 메노나이트대학(Eastern Mennonite University, Harrisonburg, Virginia)에서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과정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두 번 다시는 뼈아픈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viii) 2008년 ‘악마, 지옥으로 돌아가라는 기도(Pray the Devil Back to Hell)’라는 내전종식 영화를 제작했다. 2011년 두 차례의 내전 속에서 자신이 체험했든 여정을 낱낱이 추억을 더듬어 ‘우리의 힘이 권력이 되기를 : 전쟁에서 자매애, 기도 및 동침이 나라를 변화시켰다(Mighty Be Our Powers: How Sisterhood, Prayer and Sex Changed a Nation at War)’라는 회고록을 썼다.
 

예멘 여성운동가 ‘타우왁쿨 카르만’
언론 자유·민주적 권리 확보 앞장
2011년 ‘재스민 혁명’ 이끌어
알리 압둘라 정권 종식에 큰 역할

마지막으로 예멘 정치인 여성운동가 타우왁쿨 아브델살람 카르만은 타이즈(Taiz Governorate)에서 정치인 겸 변호사였던 아버지로부터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으며 예멘과학기술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사라아대학에서 정치학석사를 취득했다. 예멘 최대야당이었던 알이슬라 정당(Al-Islah Party)소속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i) 2005년 7명의 공동대표와 공동으로 ‘자유로운 여성언론인(Women Journalists Without Chains)’이란 조직을 결성해, ii) 언론의 자유와 민주권리를 요구하는 운동과 2007년 5월에 언론통제의 벽을 뚫고자 모바일 폰으로 현장의 생생한 뉴스를 전파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iii) 2011년 아랍의 봄날 의거(Arab Spring uprisings) 당시에 예멘봉기에 활약해서 재스민혁명(Jasmine Revolution)을 이끌어 예멘 사람들로부터 혁명의 어머니 혹은 철의 여인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결국 2011년 1월, 1987년이후 장기집권한 지네 엘 아비딘 벤 알리 정권이 물러나자 사우디리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을 2012년 종식시키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작품(기고문)으로는 2006년 ‘대사관을 불태우는 건 방법이 아니다(Burning Embassies is Not the Way)’, 2011년 ‘혁명은 살레(Saleh)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2011년 ‘예멘의 미완성 혁명(Yemen’s unfinished revolution)’, 2012년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경우, 민주주의는 없다(In the absence of a free press, there is no democracy)’, 2013년 ‘이집트 쿠데타는 혁명에서 얻은 모든 자유를 박살내었다(Egypt’s coup has crushed all the freedoms won in the revolution’, 2017년 ‘역량강화 : 정당하고 효과적인 개발을 향한 작업(Empowering Competency: Working Toward a Just and Effective Development)’등이 남아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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