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우리는 오래 살아야 한대
아이 기르는 일 다 끝나고
뜨거운 숨결 나누는 일 다 끝나고
돈 버는 일 다 끝나고
아무 데도 오란 데가 없어지고
뭐 하라 마라 하나 없어지고
해야 할 세상 일 다 끝내고도
사탕을 물고 마른입을 적시며
우리는 더 살아야 한대
몸을 못 움직이는 날이 오고
말을 못 하는 날이 오고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날이 온대
숨도 어려워 헉헉 대는 날이 온대
쉬는지 멈췄는지 오늘 내일
살았나죽었나 오늘 내일
얇은 휴지를 코밑에 가져다 대고
실낱같은 숨결 살피는 날이 온대
* 생로병사, 삶의 네 단계에서 태어남의 다음 순서가 늙음이다. 성장도 늙음에 포함된다. 영어는 갓난아이의 나이를 셀 때도 ‘old’를 쓴다.
-시집 <장미키스>-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요산창작기금>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해설> 오늘 가장 간곡한 “안부”를 읽고 생각이 많아진다. 결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생과 사의 결정권에 대하여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야 된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게 되는 이 글은 시인의 깊은 소망이기도 하다. 할 일을 다 하고도 또 다시 잘 살아야 한다는 것에 안도의 마음이 드는 것 또한 큰 위로가 되는 글이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