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기준을 반영한 친환경 제도를 기대하며
소비자 기준을 반영한 친환경 제도를 기대하며
  • 승인 2021.05.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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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며칠 전 화장품 세트를 구매했다. 늘 사용하던 제품이 아니라 그저 관심 있게 지켜보던 제품이었는데 구매를 결정했던 이유는 "해당 제품은 개별 단상자 형태로 제로웨이스트 파우치에 포장되어 출고됩니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세트로 판매되는 화장품은 개별 상자에 들어있는 화장품을 다시 세트로 포장한 박스로 구성되어 있어 세트 포장만큼 더 많은 쓰레기가 발생한다) 도착한 제품은 재생용지로 만든 박스에 재활용이 가능한 파우치에 담겨 있었다. 그저 화장품을 구매하는 행위였지만 조금은 환경보호에 동참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이렇게 가능하면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 내는 제품에 손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환경문제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환경에 대한 고민은 코로나19 이후 더 많은 관심과 실천을 불러왔다. 기업들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포장지를 뺀 내용물만 판다는 '알맹상점'이 SNS핫플이 되었고, 장바구니와 용기를 가져가야만 구매가 가능한 매장이 늘어났다. 대기업도 빠르게 동참했다. 페스트푸드점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나 친환경 빨대를 도입했고, 일부 화장품과 세제 등의 브랜드나 유통업계에서는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한 소비자들의 '가치소비'가 늘면서 너도나도 친환경을 외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달 6일, 한 화장품 회사의 종이 포장재를 사용했다는 친환경 마케팅이 도마에 올랐다. 제품은 지난해 6월에 발매한 상품으로 용기 겉면에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 용기야)'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언뜻 본다면 용기가 종이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해당 브랜드는 '플라스틱을 최소화한 종이보틀'로 제품을 홍보했는데, 지난달 한 소비자가 제품 용기를 분리 배출하는 과정에서 종이 포장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가 있음을 발견, 이를 SNS에 게재하면서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 논란이 시작됐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재활용률이 높은 무색 폴리에틸렌(PE) 재질의 용기를 사용했고 겉면에 종이 라벨을 씌웠으며 이를 제품의 상세페이지에 밝혔었다. 재활용이 10%도 안 되는 화장품 시장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51.8% 절감하고 화장품 뚜껑에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했으니 친환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친환경에 대한 과한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오해를 사면서 '그린워싱'사례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친환경에 대한 기업들의 과한 마케팅은 곳곳에서 '그린워싱' 논란으로 번졌다. 모 백화점의 리필스테이션도 논란이 되었다. 뉴질랜드 친환경 세제의 리필스테이션으로 세제뿐 아니라 용기 또한 100% 재활용되는 사탕수수 플라스틱을 사용해 친환경을 표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세제 전량을 수입하는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세제 자체는 친환경이 맞으나 이를 운송해 오는 과정이 결국 탄소발자국을 늘이는 행위이므로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유통업계에서 운영하는 일부 리필샵에서도 아쉬움은 있었다. 리필하는 브랜드의 자체 용기만 사용 가능해 리필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용기를 구매해야 했다.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꾼 브랜드 역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사용은 여전하여 이 또한 친환경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썩는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PLA 빨대도 별도 퇴비화 설비에서 특정한 온도와 환경을 갖춰야 썩으니 이를 100% 친환경이라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기준의 문제다. 소비자도 기업도 친환경에 대한 관심은 높으나 시장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친환경적인 행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하는 것이고, 소비자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견되는 비환경적인 모습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모니터링은 더욱 더 강화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제도다. 친환경제품 시장의 공정한 질서 유지를 위해 친환경 정도에 따른 등급이 있어야 하며 이를 관리하고 인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지난달 12일 환경부가 녹색 분류체계와 표준 평가체계를 골자로 한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을 공포했고 내년부터는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환경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점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러한 기준을 소비가가 체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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