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음식 보리, 동·서양 애환을 아우르다
서민의 음식 보리, 동·서양 애환을 아우르다
  • 김종현
  • 승인 2021.06.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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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20) 고문헌상의 보리 기록
고사성어 ‘맥수지탄’
중국 시경 속 한나라 기자
“철부지 주왕 내 말 안듣더니…”
조국의 수도 폐허가 된 자리
보리이삭만 무성함을 탄식
맥수지난
폐허가 된 곳에 무성하게 자란 보리이삭을 보고 한탄을 했다는 맥수지탄. 그림 이대영

시경(詩經)에는 한나라 기자(箕子)가 은(殷)나라의 수도가 폐허가 된 그곳(殷墟)에 무성하게 자란 보리이삭을 보고 한탄을 했다는 맥수지탄(麥秀之嘆) 고사가 나오는데,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고, 벼이삭도, 기장이삭도 알차게 익어 윤기가 조르르 흐르네, 교활한 철부지 주왕 좀 보게,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이렇게 되었네(麥秀漸漸兮, 禾黍油油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라고 읊었다. “네가 없으면 세상 망할 줄 알았구나, 천만예요, 이렇게 연연세세 풍년이 드네요.”라고. 요사이 시쳇말로 “네(국왕)가 없다고 세상 망하는 줄 알았다니...있을 때에 잘 하지 그래.”

보리개떡(barley bread) 이야기는 성경(사사기) BC 375년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 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개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보리개떡을 ‘하느님과 기드온의 칼(Sword of Lord & Gideon!)’이라고 성경학자들은 하나같이 해석했다. 오늘날 시대감각으로 표현하면 아마도 작전암호, 작전명 혹은 ‘개떡 같은 세상을 뒤집어 찰떡같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제시다.

기드온의 보리개떡작전(Operation Barley Bread)은 i) 300명의 정예병만으로 3부대로, ii) 야간기습작전을 감행, iii) 병정들에게 나팔(trumpet)과 횃불(torches)이 감쪽같이 감춰진 항아리(pitchers)를 하나씩 분배한 뒤, iv) 심야암흑(Dark Thirty)을 틈타 진중을 기습한 뒤, 곧 바로 천지가 떠나갈 정도로 큰 나팔소리를 내어 적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v) 또한 막사를 향해 항아리 속에 감추었던 촛불로 불바다를 만듦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불교에선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간절함처럼 지극한 마음의 표현을 유식하게는 ‘이어오병기적(二魚五餠奇蹟)’에 비유했다. 초등학생들의 용어로는 ‘보리개떡 5개(five loaves of barley bread)’다. 오병이어로 4천 명 혹은 5천 명이 먹고도 두 광주리나 남았다는 진정한 의미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먹기는커녕 갖고 온 것까지 끄집어내는 기적’이다. 이런 배려기적을 BC 5천 년경 동이족의 선조인 복희씨(伏羲氏)는 구구지수(九九之數)로 계산했다. 또한 BC 600년경 관중(管夷吾, BC 725~ BC 645)이 저술한 ‘관자(管子)’의 계량정치학이 있다. 이를 경제에 적용한 게 바로 계량경제학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물고기(2)는 메소포타미아가 터전이고 보리개떡(5)은 생산물이다. 이를 오늘날 승수효과로 산출하면 32배(25)라는 양심의 승수효과가 생겨난다는 의미다.

사실, 철없던 때엔 “엄마, 엄마. 보리밥 해주세요, 내일 모래 방귀대회 일등하게요...”라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일제식민지 때는 물론 6·25전쟁 전후 보리밥도 못 먹을 때에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라고 배고픔을 잊고자 노상방요(路上放謠)를 했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보릿고개란 말을 자주 들어왔고, 춘궁기에 어머니와 산나물을 뜯으러 새벽아침을 먹었다. 중식거리로 주먹밥덩어리를 지개뿔따구에 매고 보따리 혹은 마대 등을 지고 나갔다. 해질 때까지 산나물을 채취하다고 어두워 보이지 않아야 중단하고 귀가 길을 재촉했다. 겨우 한밤중에야 집에 도착하면 물먹은 솜처럼 지쳤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산나물을 다 삶아서 물에다가 담구고 난 뒤에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웃집에서는 3일에 한 끼를 조당수로 마셨다. 이웃사촌이라, 산나물과 좁쌀을 조금씩 나눠먹었던 기억이 난다.

보릿고개란 말이 아직도 실존하고 있는 곳은 경북 구미시 박정희로 107(상모동171번지)이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는 ‘보릿고개 체험장(麥嶺體驗場)’이란 현판이 여전히 걸려있다. 그곳에선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前) 대통령을 ‘보릿고개를 없앤 사람’ 혹은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모시고 있다. 2016년 4월 28일 구미시는 근검정신과 음식관광 자원화 차원에서 박정희 테마밥상으로 ‘보릿고개 밥상’ 혹은 ‘통일미 밥상’등 6개나 개발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주신 김동길 교수는 “나를 감옥(監獄)에 넣었지만, 보릿고개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다.

기아(飢餓)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물산이 풍부했던 중국에서도 우리가 보릿고개라고 했던 그런 기아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가깝게는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의 ‘대지(The Good Earth, 大地)’에서도 기아폭동 장면이 등장한다. 북송(北宋, AD 960~ 1127) 양산박(梁山泊)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중국고전 ‘수호지(水湖志)’에서는 인육만두(人肉饅頭)이야기, BC 196년 ‘초한지(楚漢志)’에서는 유방이 죽인 팽월(彭越)의 인육으로 젓갈을 담아 중신에게 분배한 내용, 삼국지(三國志, AD 220~280)는 동탁(董卓,AD 139~192)이 사공장온(司空張溫, AD 159~191)을 죽여 쟁반 위에 올려놓고 대신에게 보여 겁먹게 했다.

중국정사에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면 한나라(BC 206년)에서 청나라 멸망(AD 1912년)까지 기아와 인육사건이 220회나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욱 심각했다. 조선실록(朝鮮實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기아(飢餓)라는 표현보다 가뭄, 한발(旱魃), 한해(旱害), 흉년(凶年), 한재(旱災) 및 기근(饑饉)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했다. 가뭄은 3천173 건, 한발 93 건, 한해 63 건, 흉년 5천948건, 한재 1천766 건, 기근(饑饉) 1천657 건으로 에둘러 적었으나, 기아 이외의 표명할 방법이 없어 기아(饑餓)만 118건이나 기록되어 있다.

◇한 톨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밀(小麥,wheat)은 BC 1만5천 년경부터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혹은 캅카스(Kavkaz)에서 재배해 그곳이 원산지다. 터키 남부 카라카닥 산맥(Karacadag Mountains)에서 BC 9천600년경에 재배했다. 식용작물 가운데 가장 많은 인류가 오래 애용하고 있는 작물이 밀이다. 석기시대에 이미 유럽이나 동양 중국에서도 널리 재배되었다. 우리나라도 BC 200~100년경 재배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리(大同郡 美林里)의 탄화소맥(炭火小麥)이 발견되었고, 경주의 반월성지(半月城址), 부여부소산(夫餘扶蘇山) 백제군량창고에서도 출토되었다. 전 세계 대략 22종이 있고, 90%의 재배소맥은 보통계 밀(T.aestivum)이다. 알곡은 양조용, 제분용, 식용 등으로 사용된다. 밀짚은 1964년 가수 박재란(朴載蘭, 1940년생, 본명 李英淑)의 “시원한 밀짚모자 포플라 그늘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의 아가씨, 연분홍빛 입술에는 살며시 웃음 띠우고”라는 노래의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에 나오는 것처럼 밀짚모자, 각종바구니, 가정용 소품과 생활필수품으로 제작되고 있다.

성경에서는 38번이나 밀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구절과 “천국은 좋은 주인이 밀을 뿌린 뒤,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주인은 가라지를 뽑으면 밀이 뽑힐 것이니 추수할 때에 가려서 거두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한 톨의 밀은 일반적으로 5~6 포기로 가지를 치고, 한 포기에 120개의 낱알을 맺는다. 한 톨의 밀(씨)은 한해에 500~600개 낱알을 생산하기에 5년째는 (120)4개의 낱알을 산출하기에 1만7천 가마니 정도의 생산량을 창출한다.

밀은 최근 술약(yeast)을 사용해서 빵(bread), 크래커(crackers), 비스킷(biscuits), 팬케이크(pancakes), 파스타(pasta), 국수(noodles), 파이(pies), 페이스트리(pastries), 피자(pizza), 세몰리나(semolina), 케이크(cakes), 쿠기(cookies), 머핀(muffins), 롤(rolls), 도넛(doughnuts), 그레이비(gravy) 등의 제과를 만든다. 또 주정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막걸리, 맥주(beer), 보드카(vodka), 보자(boza)와 같은 술을 만든다. 이외에도 뮤즐리(muesli) 등 각종발효음식을 만들거나 폴렌타(polenta), 포리지(porridge) 등의 아침식사 시리얼(breakfast cereals) 식품을 만든다.

그러나 과거 시골에서 적게 밀농사를 지으면 밀밥이나 밀떡을 해서 쌀 대용으로 먹었다. 많이 농사를 지은 농가에서는 통밀 누룩(leaven)을 만들어서 밀조주(密造酒)라고 했던 농주(農酒)를 담았다. 결혼 혹은 회갑과 같은 큰일이 있는 집안에서는 감주(단술 혹은 식혜)와 엿(과자)을 만들기 위한 엿기름(malt)을 만들어 놓았다가 유용하게 사용했다. 여름용 식량을 위해서 밀가루를 내어서 잔치나 제사 때는 차전병(茶煎餠), 호박전, 정구지전, 감자전, 고구마전 등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다. 장마철 재수 좋은 날은 출출함을 극복하고자 ‘가마니 떡(팥,콩, 김치 등으로 속 채움)’ 혹은 ‘벙어리 떡(속 채우지 않음)’이라는 밀전병(煎餠)을 얻어먹었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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