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괜찮아 놀아도 돼’
[치유의 인문학] ‘괜찮아 놀아도 돼’
  • 승인 2022.04.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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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2019년 필자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일을 했다. 마치 굶주린 승냥이처럼 일을 찾아다녔고 쌓아놓고 일을 했다. ‘워크홀릭’이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그즈음 모든 불행이 태풍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부모님의 사망은 시작이고 가까운 사람의 사업부도에서 필자의 사기피해까지…. 마치 불행이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몰아 순식간에 나의 영혼과 감성을 삼켜버렸다. 아무리 상담심리를 전공했더라도 매 순간 다가오는 고통은 가혹한 현실 앞에 무기력했다. 고통과 상처를 잊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몰입’이다. 적어도 학문적으론 그랬다. 그래서 일에 매달렸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당연히 상처와 고통을 주는 아픔은 잊을 수 있었다. 그해 12월 내 생애 최고로 많이 아팠다. 죽도록 아팠다. 열이 39도를 넘어서고 하늘이 땅으로 내려왔다. 그 와중에 강연도 다녔다. 내 몸에 전기 코드가 갑자기 빠진 느낌, 번 아웃이 온 것이다.

절대 쓰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보였던 내 몸과 마음이 허물어졌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철같은 내 신념이 내 몸과 마음을 역으로 친 것이다. 허리가 꺾이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재규어처럼 스무날을 비틀거리며 살았다. 그래도 견뎌보겠다고 지친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시내로 나갔다. 한적한 동네 어느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작은 서점 앞에서 나는 숨이 멎었다. 내가 그토록 화두처럼 찾았던 해법이 그 서점의 창문에 처방전처럼 붙어있었다. ‘아~ 세상에 바로 이거였구나’

1 2 3 4 5 6 7 8 쉼표 10

쉼표는 숫자 9를 닮았다. 1에서 9까지 열심히 달려왔다면, 9에서 10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쉬어 가라는 뜻이다. 9에서도 잠시 쉬어주지 않고 10, 11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은 12는 구경도 못하고 지쳐 주저앉고 만다. 쉼표에 인색하지 마라. 쉼표를 찍을 줄 아는 사람만이 마침표까지 찍을 수 있다.

세상에~ 바로 이거야! 나는 쉬어야 했구나. 어쩌면 나는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산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했는지 모른다. 더 치열하게 살고 치열하게 살아야 된다는 도덕적 신념이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쉰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휴식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신적, 영혼적, 감성적 모든 에너지가 다 함축되어 있다. 미국의 유명한 에너지 전도사 토니 슈워츠는 인간의 완벽한 휴식은 정신적, 신체적, 영혼적, 감성적 이 네 가지가 완벽하게 힐링할 때 진정한 휴식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모퉁이 작은 서점에서 적어온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붉은 해가 새들을 모아 함께 산을 넘으려 할 즈음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오늘 경험했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고자질하듯 늘어놓았다. “그래 괜찮아! 넌 놀아도 돼, 충분히 놀 자격이 있어” 그 말에 참았던 울음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놀자! 우리 재미있게 놀아보자”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거울처럼 보아온 친구였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부지런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였다. 내 거울 같은 친구의 그 말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고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 이제 나도 쉬어도 되는구나…’ 내 생애 최고의 삶의 쉼표였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성숙시켰다. 중견기업에 다닌다는 K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암에 걸렸다고 했다. 팀장으로 진급했다고 축하까지 했는데 암이라니…. 평소 친절하기로 유명하고 바쁜 와중에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친구라 더 놀랐다. 아무리 일이 많이 밀려와도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묵묵히 일만 했단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일이 밀려왔고 꾹꾹 눌러 놓은 마음의 상처는 결국 몸에 상처를 남겼다. 친구의 하소연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하루종일 병원에 누워 있어보니 내가 너무 초라했어, 의사가 쉬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난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더라구”. 상담을 마치고 친구에게 프로그램을 짜주었다. 재미있고 즐겁게 노는 방법, 일종의 놀이치료 처방전이었다. 거창하고 돈 많이 드는 유흥의 놀이가 아닌 일상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드는 방법을 처방했다. 한 달 뒤 연구실로 K가 연구실로 찾아왔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친구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병원에 다니면서 받아본 처방전 중에 자네 처방전이 내 생애 최고의 처방전이었네~!”

‘일하면서 즐기고, 즐기면서 일하라’ 미국 실리콘밸리 어느 사무실 벽에 붙어있던 촌철살인의 글이 벚꽃 향기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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