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꽃비
[달구벌아침] 꽃비
  • 승인 2022.05.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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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봄꽃이 피어 앙상한 산을 노랑, 하양, 분홍으로 물들였다 싶더니 곧 진다.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달라 하나가 지고 나면 새로운 다른 꽃이 피어 졌는가 아쉬워할 겨를이 없다. 새로이 피는 다른 꽃에 눈이 쏠려 꽃이 지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리없이 조용히 오므라 들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산수유가 피었다가 개나리가 피고, 목련이 피었다 진달래가 피고, 복숭아꽃이 피었다 벚꽃이 핀다. 슬라이드 넘어가듯이 차례를 넘겨준다. 하나에만 머물지 못하고 새로이 피는 꽃으로 자연스레 눈이 이동한다.

유독 한 꽃이 예외다. 필 때는 소리없이 피어나지만, 질 때는 더 소리를 내는 꽃이 있다. 벚꽃이다. 필 때 보다, 피어 있을 때만큼이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떨어지는 꽃이다.

봄 꽃놀이의 대명사, 벚꽃. 가로수를 벚꽃으로 심어놓은 길이 많다. 아파트 단지나 동네에 벚꽃나무 한 그루 정도는 볼 수 있다. 벚꽃이 피었을 때가 따뜻한 봄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이다. 올 봄에는 ‘아양교 벚꽃터널’로 꽃놀이를 갔다. 동촌 강변 둑 양 옆에 커다란 벚꽃나무가 있었다. 대구에 산 지 30년이 넘었는데 처음 보았다. 지인들이 동구 벚꽃이 좋다고 말을 해도 넘겨들었다. 대구에서는 대학교 안의 벚꽃이 제일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와서 보니 아양교 벚꽃 터널이 일품이었다. 강물이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해 주는 것 같았다. 걷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다리에서 다음 다리 까지 한 30분은 걸었던 것 같다. 유원지 마냥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벚꽃을 안 것은 스무살 때였다. 울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울산에 사는 친구가 진해 벚꽃이 유명하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먼 길이었다. 진해에 다다랐을 즈음부터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다. 길게 늘어선 버스 행렬이 벚꽃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뭐가 그리 유명해서 이렇게나 많이 가나 싶었다. 한참을 버스안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버스에서 내리자 감탄사가 나왔다. 아~~이래서 사람들이 오는구나.

차량이 제한된 도로가에 벚꽃이 풍성한 한복 치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꽃잎 한 잎 한 잎으로 어울어진 커다란 솜사탕같기도 했다. 꽃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꽃잎을 더욱 화사하게 해 주었다. 친구와 그 길을 걸으니 행복 그 자체였다. 예쁜 커피숍을 찾아다니던 나이였는데, 그 어떤 커피숍에 있을 때 보다 더 충만한 기쁨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벚꽃 나무 아래에 있는 우리의 모습도 벚꽃처럼 아름다웠다.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난데없이 하얀 제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군인이 들어섰다.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멋진 광경이었다. 말을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멋있었다. 벚꽃과 하얀 해군 제복은 완벽한 조합이었다. 어둠이 몰려와 가로등이 켜지자 꽃잎은 빛을 품어냈다. 희뿌연한 빛이 나무 전체를 감쌌다. 후광이었다. 더할 나위 없었다.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피어 있는 벚꽃이 아름다웠지만, 벚꽃은 질 때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홍희만일까? 스물다섯, 대학교 교정에서 중간고사를 치기 위해 시험 준비에 열중할 동안 벚꽃은 기한이 다 되어 서서히 지고 있었다. 바람이 넓은 교정에 불어올 때 꽃잎이 하나 하나 비처럼 쏟아졌다. 그 모습이 피어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느꼈다. 질 때까지 자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벚꽃. 부모와 놀러온 아이들은 그 아래에서 꽃잎을 잡으려 깡충깡충 뛰었고, 젊은 연인들은 잠시 멈춰서서 두 손을 꼭 잡았다. 홍희는 언젠가 스르르 사라질지 모르는 자신을 보는 것처럼 아련한 감정이 생겼다. 사라지는 그 날 까지 아름답게 살자. 사라지는 그 날 아름답게 사라지자.

딸과 함께 드라이브를 가는 길 위로 꽃비가 내렸다. 딸은 환호성을 올렸고, 홍희도 그 날 꽃비는 행복을 주었다. 딸과 함께라서 행복한 꽃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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