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파초도...조선땅서 키우기 힘든 온대성 식물, 사대부 마음 빼앗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파초도...조선땅서 키우기 힘든 온대성 식물, 사대부 마음 빼앗다
  • 이상환
  • 승인 2022.08.10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 타도 속심 죽지 않고 새순 ‘빼꼼’
기사회생·자강불식 표본 자리매김
조선의 왕 정조도 그린 바위와 파초
단순한 배치와 거친 필법 ‘독창적’
보물 제744호와 함께 중요 자료로
여름이 무르익어 엊그제 입추가 지났다. 중부지방은 물난리로 시끄럽고, 남부지방은 뜨거워서 난리다. 그래도 정원의 나무와 풀들은 푸르름의 절정으로 그 끝을 달려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더운 땡볕 아래 푸른 잎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파초(芭蕉)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예전 유명한 대중가요의 제목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파초(芭蕉: Musa basjoo)는 노지에서도 잘 자라며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가 원산지로서 다년생 관엽식물로 열매 결실 이전 모습은 바나나 나무와 흡사하다. 사진의 모습으로 아마도 눈치가 빠른 분들은 "바나나야 뭐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바나나 또한 생강목 파초과(Musaceae)로 분류되는데, 파초를 일본 바나나(JapaneseBanana, バショウ)라고도 한다. 몇 년 전 대구에서 바나나가 열렸다는 뉴스를 본 적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파초였다고 한다. 파초의 뿌리는 굵은 덩어리 모양으로 줄기 높이는 4~5m, 잎은 길고 둥글며 길이는 2m가량으로 자란다. 여름에 황백색 꽃이 이삭 모양으로 피는데 민간에서 잎, 잎자루, 뿌리 등을 해열과 진통제로 쓰며, 꽃말은 탈속(脫俗) 또는 기다림, 미인을 지칭한다. 파초는 잎이 넓고 우아한 자태로 선인(仙人)의 품위가 있으며, 특히 겨울에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듬해 새순이 다시 나오고, 불에 탄 뒤에도 속심이 죽지 않고 다시 싹을 틔워 기사회생(起死回生)의 표상으로 여겼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문인 사대부들에 의해 정원 문화가 크게 성행하였다. 당시 이러한 정원 문화는 명(明)나라 말기(末期) 강남지방 사대부의 원림 문화 취향과 관련 깊다. 조선의 문인들이 남방계 식물인 파초를 정원에 심어 감상하는 문화를 형성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왜냐하면, 파초는 온대성 대형 초본식물이기 때문에 조선 땅에서 파초를 심고 가꾸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인들이 파초를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옛 선비들이 파초를 아껴 가꾼 것은 끊임없이 새잎을 밀고 올라오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정신을 높이 산 까닭이다.

이는 북송(北宋)의 문인 장재(張載 1020~1077년)의 시 〈파초芭草〉에서도 잘 드러난다.
[芭蕉心盡展新枝] 파초 속잎이 다하면 새 가지를 뻗어나고
[心卷新心暗己隨] 돌돌 말린 새 속잎 슬며시 따라 돋아나네
[願學新心長新德] 새 속잎을 배워서 새로운 덕을 쌓고
[施隨新葉起新知] 이어 새잎 따라서 새 지식을 기르리라

강희안(姜希顔)도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류를 9품으로 나누어 평할 때, 파초를 앙우(仰友)·초왕(草王)·녹천암(綠天菴)이라 부르면서 부귀한 모습을 취하여 2품에 올렸다고 한다.
또한, 파초라는 이름도 한 잎이 쭉 퍼져 있고, 다른 한 잎도 쭉 퍼져 있는 모습에서 왔다고 한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파초의 잎은 여름철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청량감을 준다. 이러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과 같은 풍모를 지닌 것으로 여겨 선선(扇仙)이라 불렀다.

 

장승업작 파초와 신선-국립중앙박물관
<그림1> 장승업작 파초와 신선-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은 파초 나무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는 선인(仙人)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특히 신선의 얼굴을 가는 붓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인물 묘사를 보면 중국식 옷차림으로 당시 복고풍의 인상을 주고 있어 시대적인 변화가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선은 크게 그려졌고, 반면에 그 앞에 있는 동자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어 있다. 화면 왼쪽에 백련 지운영이 1933년에 이 그림이 낙관이 없으나 오원 장승업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여기 정조 임금님의 아름다운 파초도를 보시라
 

정조_필_파초도_동국대학교박물관
<그림2> 정조_필_파초도_동국대학교 박물관.

정조 필(正祖 筆) <파초도(芭蕉圖)>는 조선 시대 정조(재위 1776∼1800)가 그린 그림으로, 정조는 시와 글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림도 굉장히 잘 그렸다고 한다.
보물 제744호인 정조필 국화도(正祖筆 菊花圖)와 재질이나 크기가 같아서 처음부터 쌍폭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린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균형적인 배치를 보여준다. 먹색의 짙고 옅은 정도와 흑백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파초잎의 변화를 잘 표현하였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 정조의 호인 '弘齋(홍재)'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어 정조의 작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먹의 농담과 거친 필법으로 바위의 양감과 질감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파초의 줄기 한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붓 모양으로 곧추 새싹을 올린 뒤, 순서대로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넉넉하게 펼쳐진 잎은 그 변화감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글씨와 그림 및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모습과 남종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조 필 국화도(보물)와 함께 조선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박정숙-파초도
<그림3> 박정숙-파초도.

오늘날의 민화에서의 파초 그림을 보자. 예전부터 전해오는 파초도 민화본을 토대로 현대적인 색채로 재해석한 그림이며 파초가 가지고 있는 부귀라는 상징에 초점을 맞춰 부귀의 상징인 모란과 어우러져 화려한 이미지의 파초를 선보이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그림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듯도 한데... 그럼에도 배경으로 서있는 파초의 그러한 욕망이 부질없어 보이는 듯 초연하게 서 있다.
문득 이 그림을 보면서 예전 쌍둥이 가수로 유명한 수와 진의 <파초>라는 노래를 음미해 본다.

불꽃처럼 살아야 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에 풀잎처럼
우리 쓰러지지 말아야 해.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이 노래의 제목이 파초인 이유는 파초가 잎이 넓고 크기 때문에 갑자기 비가 오거나 햇살이 뜨거울 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비와 따가운 햇살을 피하게 해준단다. 또한, 파초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나그네일지라도 원망하지 않고 하늘과 더불어 노래하기를 즐겨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 가사에도 세상이 각박하고 정이 메말라 자신밖에 모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던져주는 듯한 깊이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우리의 삶이 비록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가슴엔 정말로 소중한 것이 있고, 그 소중한 것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