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기 배우 모노 드라마 도전,1인극으로 전달하는 ‘인간다운 삶’ 메시지
박세기 배우 모노 드라마 도전,1인극으로 전달하는 ‘인간다운 삶’ 메시지
  • 황인옥
  • 승인 2022.10.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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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림소극장 ‘우스운 자의 꿈’
도스트예프스키 소설 원작
‘연민·사랑이 지상낙원’ 역설
관람객과 공감대 형성 노력
“1인극 부담돼도 성장 밑거름
다양한 예술장르 융·복합 시도
이름이 브랜드 되는 배우 욕심”
극단백치들의연극-미친세상에는햄릿
극단 백치들의 연극 ‘미친 세상에는 햄릿’에서 연기하는 박세기 배우의 모습.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 무대를 끌고 가야 하는 1인극의 특성상 배우가 느끼는 외로움은 클 수밖에 없어요.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몰입도를 계속 끌고 가는 부담감도 적지 않죠. 하지만 연기자로서 한 뼘 성장하는 무대인 것은 틀림없어요.”

박세기 배우가 1인극(모노 드라마)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연습실을 찾았다. 대구에서 1인극은 흔치 않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도전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연습실을 찾은 지난 19일은 공연을 며칠 앞둔 시점이라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묵직한 작품임에도 연습 무대 위의 그는 막힘이 없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는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극 ‘반향’, ‘내 이름은 강’, ‘녹차정원’ 등 지금까지 30여편의 작품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쳤던 내공이 이번 작품에 응축되는 모습이었다.

그가 공연하는 연극은 극단 솥귀의 1인극 ‘우스운 자의 꿈’. 백광현이 극본과 연출을 맡고, 무대 위 배우의 움직임은 김완욱 안무가가 짰다. 초연 무대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21일부터 23일까지 한울림소극장에서 열린다. 1인극이기는 하지만 이번 공연에선 유정인 배우가 ‘존재’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내면이자 오브제 역할을 담당한다.

이번 작품의 원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우스운 자의 꿈’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만사가 귀찮고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주인공 남자의 꿈 속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문제와 인간다운 삶의 문제를 사유한다. 그리고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제시한다.

주인공은 무기력한 자신을 우스운 인간이라고 자조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결심을 하자 모든 것을 체념하고 길을 걸고 있는 모습에서 극은 본격화된다. 그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비에 젖은 여자아이를 만나지만, 주인공은 아이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마음이 편할 리는 없고, 죄책감에 사로잡히다 잠이 든다. 꿈에서 그는 순수한 사람들로 가득찬 ‘제2의 지구’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과학과 이성으로 사람들을 타락시켜 자책하다 깨어난다. 그리고는 그는 어젯밤 길에서 만난 소녀를 찾으러 나선다.

그가 “‘어렵고 난해하지만 원작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연출가의 의도에 충실하려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소설에서 불행한 이웃에 대한 ‘연민’ ‘동정’ ‘사랑’이야말로 지상낙원이라고 역설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메시지에 그 역시 충분히 공감했고, 그 해석을 관람객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한 그가 배우의 길로 들어선 것은 군 제대 후였다. 군대 후임이 연극 배우 출신이었는데,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빛이 살아있음을 발견하곤 자신도 그런 눈빛을 갖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그때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 제대 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연극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아동극으로 기초를 닦은 후 차츰 배우로서의 경험이 쌓이면서 비중있는 역할로 옮아갔다.

배우로서의 경력이 쌓이자 서울 진출도 감행했다. “연극의 중심부에서 꿈을 펼쳐보자”는 각오로 극단 청우에 입단했고, 서울시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1년간 경험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커진 꿈만큼 좌절의 수준도 높아갔다.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는 배우의 한계, 많은 무대에 서도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절망했고, 그는 결연하게 무대를 떠날 결심을 한다.

특히 음악이나 미술의 경우 연주자나 화가의 자유의지가 충분히 발현되는데, 연극은 전체 극에서 한 부분에 국한되고 그마저도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는 현실을 또렷하게 자각하고 절망했다. 당시 4~5년을 무대를 떠나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당시 그가 내린 결론은 “무대를 떠나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대를 떠나 있으면서 비로소 무대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닫게 됐어요.”

다시 그를 품어준 곳은 대구예술발전소 입주작가 프로그램이었다. 그곳에 1년간 입주해 활동하며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예술발전소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연극 배우도 자유의지를 실현할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일도 시작했다.

그때부터 연출가에 도전하고, 다양한 예술장르와의 융·복합도 시도했다. 작품을 기획하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무대를 이끌어 가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비로소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연출자와 배우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연기의 폭도 넓어지고, 배우로서의 자신감도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에 의한 선택에만 기대기보다 제 스스로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연극의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느꼈던 배우로서의 한계가 걷히는 것 같았어요.”

10여년간의 활동기간 동안 상복도 적지 않았다. 2008년 대구연극제 신인연기상, 2009년 전국연극제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최근에는 대구KBS ‘지역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를 맡으며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런 그의 연기 철학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그는 연극 대사 톤도 일상 속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타 장르와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다양한 시도 뒤에는 연극의 외연 확장에 대한 열망이 자리한다.

그의 롤 모델은 프랑스 배우 ‘드니라방’이다. 이름 석자가 브랜드가 되는 배우가 되고픈 열망이 드니라방에 투영되어 있다. “드니라방처럼 저라는 배우 자체가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주고 성장해 가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저 만의 결을 가진 배우가 되는 그날까지 저의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에 맡은 배역은 진중한데, 무대 위 그의 눈빛은 따스했다. 연기의 저변에 깔린 인간애가 그의 눈빛을 타고 흘렀다. 그가 “어린시절 가난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그런 경험들이 연기에 묻어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연민하고 사랑했기에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듯이, 연기자도 삶에서 묻어나는 진정성이 연기에 깔려야 좋은 배우로 거듭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저를 비롯한 인간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고, 그것을 연기로 승화해 가면서 좋은 배우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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