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모, 프랑스 세손 갤러리 ‘Spring’展
남춘모, 프랑스 세손 갤러리 ‘Spring’展
  • 황인옥
  • 승인 2022.12.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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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멈춘 일상…자기반성 통해 ‘순수성’ 길어올리다
평생 예술적 과제로 탐구한 ‘선’
비탈진 밭·능선·반짝이는 검은 비닐…
어린시절 본 산골 풍경, 뇌리에 남아
선으로 여백 표현하며 회화 근원 추구
광목천·H빔·합성수지로 ‘ㄷ’ 조각 제작
캔버스에 골조 만들어 올려 공간감 부각
“밭 일구듯, 평면부조에 생명 꿈틀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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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세손 앤 베네티에르 갤러리 본점 전시장 전경.
남춘모 제공
코로나 19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시련의 무게만큼이나 던지는 교훈 또한 간단치 않다. 코로나 19는 예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강도의 성찰을 요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성’이었다. 코로나 19로 일상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빛의 속도로 달리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자신들의 모습을 인지하게 되었고, 코로나 19를 전차의 속도를 줄이거나 전차에서 내리라는 경고로 받아들였다.

작가 남춘모도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을 ‘성찰’의 계기로 삼았다. 코로나 19로 예정됐던 전시들이 줄줄이 연기되는 등 외부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여유로워진 시간들을 자기점검으로 채워갔다. 달성군 가창 작업실에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되면서 외부로 열려있던 의식이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고, ‘자기반성’에 대한 자각으로 채워졌다.

그가 “코로나 19가 일상을 멈추게 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아프게 한 대목은 자신이었다. “코로나 19로 작업실 생활만 가능하게 되면서 ‘미술 시장’에 너무 끌려 다닌 저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코로나 19가 인간에게 ‘인간성 회복’을 주문했다면, 작가인 그에게는 “작가로서의 순수성 회복”을 요구했던 것이다.

남춘모 작가의 개인전 ‘Spring’전이 프랑스 생테티엔에 있는 세손 앤 베네티에르 갤러리 본점에서 17일부터 열린다. 세손 갤러리는 뉴욕, 파리, 리옹, 룩셈부르크 등 전 세계 여섯 개의 지부를 둔 갤러리로,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프랑스 작가들의 사조인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Surfaces)’의 중심이 된 갤러리이자 참신하면서도 내실 있는 전시를 진행하는 곳으로 유럽에서 정평 나 있다. 특히 세계적인 작가들인 프랭크 스텔라, 생 오를랑, 베르나르 브네 등과 협업하는 갤러리다.

그는 이번 전시에 회화작품인 ‘Stroke-Line’ 연작과 설치 ‘Stroke-Beam’ 연작, 그리고 부조회화인 ‘Spring’ 연작, 드로잉 등 7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선(線)의 역동적인 주행이 숨을 멎게 하는 회화 작품 ‘Stroke-Line’ 연작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진 결과 획득한 결정체다.

그가 “예전에 습작으로 하던 작업을 코로나 19를 계기로 심화하면서 나온 작업”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회화 작품은 아무런 외부적인 개입 없이 순수하게 저 혼자 중심적으로 몰입해 얻은 작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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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 작가가 프랑스 생테티엔에 있는 세손 앤 베네티에르 갤러리 본점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춘모 제공

남 작가 예술은 ‘선(線)’에서 출발해 선으로 종결된다. 그가 평생 예술적 과제로 탐구한 것은 선. 선의 출발은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경북 영양 산골 출신인 작가는 유년기에 고랑이 뚜렷한 비탈진 밭과 풀의 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밭이랑을 덮은 검은 비닐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풍경과 밭을 둘러싼 산의 능성을 보며 자랐다. “어린 시절 기억 속 풍경들이 뇌리에 화석처럼 잠재돼 있다,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작업의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선(線)은 작업에서 반입체(부조) 회화인 ‘Spring’ 연작으로부터 출발했다. 초기에는 아크릴 판에 천을 올린 후 캔버스에 붙여 직선적인 공간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제작하다, 아크릴이 작업하기에 고된 재료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아크릴표면 같은 견고함을 장착한 광목천으로 대체했다. 캔버스 바탕 위에 딱딱해진 ‘ㄷ’ 형태의 광목 조각들을 반복적으로 붙여가며 수직이나 수평의 격자 골조 패턴을 형성하며 공간감을 구축했다.

선(線)이 그의 미술의 출발이자 끝인 배경은 단순하다. ‘선’으로의 환원으로 회화의 근원을 모색하려는 것. 회화의 기본 요소 중의 하나인 선을 통해 공간과 여백을 표현하며 회화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의도다. “선을 통해 제가 늘 고민해온 회화의 문제와 공간 속의 사물성 문제를 새롭게 제시하고 있어요.”

아크릴에서 광목천으로 재료의 변화를 감행하자 작업 과정에서 새로운 수고가 요구됐다. 하지만 그는 기껍게 광목천에 표면 다듬기에 몰입했다. 이때 활용되는 것이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H빔이었다. 먼저 광목천을 일정한 폭으로 잘라 H빔 틀에 고정시킨 후에 폴리코트(합성수지)를 붓으로 바르고 말려서 굳힌 후 일정한 크기로 자르면 재료가 완성된다. 자른 ‘ㄷ’ 형태의 조각들을 캔버스 표면에 다양한 조형감의 선으로 이어붙인 후, 색을 칠하면 ‘Spring’ 연작이 완성된다. “광목천을 활용하면서 직선과 함께 곡선 작업도 가능해졌어요.”

‘ㄷ’ 형태의 조각들로 구현된 공간은 평면에 부조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 연작의 탁월성은 공간에 생명력을 끌어들인다는 점이었다. 도드라진 선과 선들 사이 공간에 빛과 바람과 습기가 무시로 넘나들며 공간의 기운을 시시각각 변화시켰다. 그가 “입체적인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부조 사이사이에 빛이 들어오자 유년기에 밭이랑에 설치했던 검은 비닐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풍경과 흡사해 졌어요.”

회화작품인 ‘Stroke-Line’ 연작은 조각들의 연결성으로 선을 구축한 부조 연작보다 선이 보다 직접적이며 강렬하다. 원색으로 일필휘지로 구축한 선들의 모양새가 날것의 용솟음치는 기운과도 흡사하다. 드로잉 전에 캔버스 표면 위에 광목천은 덧대는 작업이 추가되는데, 그것마저 날것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여기에 붓질 후 흘러내리는 물감의 흔적까지 작업의 일부로 수렴한 부분에선 또 다른 이야기들의 자박거림까지 들려온다.

“아버지가 일궈놓은 밭이 생명을 키우는 공간이듯이, 제가 평면에 부조로 구축한 공간에도 생명력이 꿈틀대기를 바랐어요.”

이번 세손 앤 베네티에르 갤러리에 전시되는 ‘Stroke-Beam’ 연작은 ‘Stroke-Line’ 연작 속의 선들을 해체한 설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선 전시장 천장에 설치하여 공간과의 관계성을 드러낸다. 관람객들은 설치 작품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또 하나의 관계성을 획득할 수 있다.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한 두 가지의 핵심에 접근하는 방법도 유용하겠지만, 온전한 이해를 얻고 싶다면 보다 입체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런 논리로 남 작가의 작업이 유년기 놀이터였던 밭이랑이나 산세만의 영향으로 보는 것은 너무 지엽적인 접근법일 수 있다. 그의 의식은 그 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선대 화가들이 가졌던 선과 여백에 대한 인식 위에 있다”고 했다. 그의 작업이 전통 수묵화의 정신과 미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였다. “선대 작가들은 화선지에 먹선(墨線) 몇 가닥만 치고 여백을 남겼죠. 서양은 빈 여백을 미완이라고 하지만 전통 수묵화에선 작품의 일부였죠. 저는 그 지점에서 흥미를 느꼈어요.”

그의 작업은 작가 개인의 기억, 선대 작가들의 예술적 감수성과 함께 한국 근대사와도 맞물린다. H빔이나 폴리코트(합성수지) 등의 재료들은 모두 한국 근대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재료들이다. 한국 근대사를 이끈 산업화의 현장에서 사용된 재료들이다. “작품은 작가가 살아온 역사의 총체이며, 저 역시 그런 영향들을 받아 작업에서 적극 수용한다는 입장을 취해왔어요.”

수묵하면 일필휘지다. 작업 방식 또한 수묵화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획 없이 ‘ㄷ’ 형태의 조각들을 올리기 시작하면 광목 조각들과 혼연일체가 되며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선들을 구축해 간다.

“부조나 회화나 설치에 표현된 선의 형상들이 다채로워서 계획된 결과처럼 보이지만 아주 즉흥적인 작업의 결과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해진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선들의 기세는 사실은 수많은 상념과 고뇌와 깨달음을 향한 여정들의 집합으로 드러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이 순간적으로 선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숙련된 선이었어요. 수많은 반복과 공부의 결과였죠.”

그는 색에 대해 적극성을 띤다. 부조에서 단색을 선호하고, 회화에선 오방색 같은 강렬함도 마다하지 않는다. 색을 다채롭게 사용하지만 색에 대단한 의미나 가치는 크게 염두에 두진 않는다. “색은 손을 통해 캔버스로 전해지는 기운들을 단순하게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물성의 하나로 활용할 따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인사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세계 보편 미학에 부합하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의 계속된 여정에는 스스로를 농부라고 인식하는 태도가 숨겨져 있다. 척박한 밭에서 농부가 말없이 오랜 시간 일 하며 생명을 길러내듯, 그 또한 작업을 하나의 결실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여긴다. “제게 전시장이나 캔버스는 예술이 자라는 대지와 같습니다.” 전시는 2023년 2월 1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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