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고인돌, 한국에 전 세계 총량 40% 3만5천기 존재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고인돌, 한국에 전 세계 총량 40% 3만5천기 존재
  • 김종현
  • 승인 2022.12.20 2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2)동서양에서 돌(石·stone)이란 말의 기원을 더듬어
돌 용어, 영어 stone·英 계량단위서 유래
최근 일본 ‘살생석’ 세계 언론서 주목
구미호라는 스토리텔링 관광자원으로
한반도를 고인돌의 본향이라고 해
달성 화원읍 암각화 고인돌 측정 결과
당시 주위 거주 주민 1천500명 추정
달구벌지키는돌
달구벌 곳곳에 지역을 지키는 돌이 있다. 그림 이대영

돌(石·stone)이란 용어는 영어단어 스톤(stone)은 영국 혹은 야드파운드 계량단위에서 14파운드(6.35㎏) 단위 스톤(stone)에서 유래되었다.

‘대영제국’에서는 체중의 무게단위로 스톤을 사용하였고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즉 성경에 사용했던 저울추(weight) 혹은 저울대(scale) 등을 무게단위 스톤으로 대용했다. 성경 법률(The Biblical Law)에서도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저울추(錘, weight)를 하나로 매달지 말라.”라는 구절에서 부담 혹은 무게를 스톤으로 번역한 데 기원하고 있다.

여기서 저울추란 “하느님께서 질색(가증)하시는 건 그놈의 저울추다. 크다니 작다니 하는 거짓의 저울은 옳지 않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관련 성경구절을 살펴보면 신명기(25:13)에선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그리고 잠언(11:1)에서도 “속이는 저울을 하느님께서 믿으시지 않았으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같은 잠언(20:10)에서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라고 적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자 돌석(石)자에 대하여 살펴보면, 청나라 단옥재(段玉裁, 1735~1815)의 설문해자 풀이에선 “산 돌(山石)을 말하며, 클 석(碩)의 발음을 빌렸다. 어떤 사람은 120근의 무게단위 석을 빌려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자모양새는 낭떠러지 엄 아래와 동굴(空) 혹은 사람(口)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풀이된다.

최근 일본에선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생명체를 다 죽이는 ‘살생석(殺生石)’이 세계 언론을 달구고 있다. 대표적으로 도치기 현 나스마치 나스유모토 온천 인근에 있는 용암을 말한다. 유황분출로 모든 생명체를 죽인다는 내용인데 여기에 “꼬리가 9개인 요사스러운 여우(九尾狐)”이야기를 입혀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지혜를 살린 이런 곳이 10여 개소가 넘고 있다.

이런 구미호 신화는 선진(先晉)시대 설화를 진(晋)나라(265~420)의 곽박(郭璞, 276~324)이 주를 달아서 완성한 산해경(山海經)에서 “청구 구미호(靑丘九尾狐)”가 나오는데, 한반도 별나라(辰國, 達句伐) 청구(靑丘)의 신비스러운 구미호(神妙九尾狐)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2000년 초부터 주민 창작 프로젝트로 장가계의 천문산 구미호를 오페라로 창작했다. 이어 일본도 살생석 구미호라는 스토리텔링 관광자원을 만들었다.

◇고인돌(dolmen)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어떤 개념을 파악하는데 정확한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면도칼 같은 판단(Razor-like Judgment)’을 가능하게 한다.

고인돌(혹은 받침돌, 支石, pedestal stone), 선돌(혹은 세운돌, 立石, menhir), 눕힌 돌(혹은 누운 돌, 臥石, lied stone), 뚜껑돌(혹은 덮개돌, 蓋石, cover stone), 누름돌(鎭石·press stone)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인돌 무덤(dolmen·支石墓)이란 수직거석 2개 이상의 받침돌과 수평관석 즉 뚜껑돌아래에 단순한 무덤방(尸身室·chamber)으로 만들어진 큰 돌 무덤(巨石墓·mega-lithic tomb)을 말한다. 기원전 4000~3000년 초기 신석기시대까지 소급되며, 세계에서 한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 30~100기(基)나 밀집되어 있기에 한반도를 고인돌의 본향(本鄕, home)이라고 한다.

한국엔 전 세계 총량의 40% 정도인 3만5천기 이상이 있다. 서양에선 가장 오랜 된 것은 7천년 전으로 보고 있으나 한반도에서는 BC 1만2000년 전까지 소급되어 신석기부터 철기시대 1천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고인돌에서 발굴된 인골로 유전인자(DNA) 분석 혹은 안면복원기술을 통해 판별한 결과 오늘날 서양 백인(독일계, 영국계 등)들 계통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 지구촌 내에 자유로운 이동이 있었음을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고인돌은 민간인 장례에 있어, 시신을 묻는 방 모양에 따라 항아리 묻(배)기(埋瓮), 바위 묻(배)기(埋岩), 혹은 항아리바위(瓮岩)라고 했다. 괸 돌을 괸(고인) 바위 혹은 암탉바위라고도 하며, 덮개돌은 모양에 따라 배 바위(舟巖), 거북바위(龜巖), 두꺼비 바위, 개구리 바위(蛙岩)라고 분류했다.

고대천문학 혹은 민간신앙을 반영해 배치(설치)함에 따라 i) 북두칠성처럼 7개로 설치한 칠성바위, ii) 남두육성을 본뜬 육성바위, iii) 혼자 지키는 장군모양의 장군바위, iv) 2~10개 무더기로 세운 군집암 등이 있다. 설치방법에 따라 i) 괸 돌과 뚜껑돌로 구성된 고인돌, ii) 프랑스나 영국처럼 표지 혹은 상징으로 세운 입석, iii) 신전의 열주처럼 줄지어 세운 열석, iv) 영국의 스톤헨지처럼 30여 개의 거석을 환형으로 설치하는 환형열석, 그리고 v) 칠레 이스터 섬의 거인석상처럼 조각석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세우는 석상이 가장 많다. 이곳에서 최고 10m이상 82톤의 거석상은 부활하는 새의 비밀을 의미하고 있다.

◇화원읍 고인돌 주변엔 1천500명 거주 추정

고인돌 세우기 재현행사를 하고 있는 화순군 고인돌문화 소개 홈페이지에선 고인돌 축조절차(笏記)는 : i) 고인돌 세울 장소 마련하기, ii) 덮개돌 구하기, iii) 덮개돌 옮기기, iv) 무덤방 만들기, v) 받침돌과 묘역 설치하기, vi) 덮개돌 올리기, vii) 제사 지내기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처럼 건축용 중장비를 동원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사람의 힘으로 채석, 운반 그리고 축조했기에 특별한 기법들이 동원되었다. 즉 먼저 채석에 있어 i) 동수팽창채석: 돌 틈에 물 부어 채석하기 혹은 목수팽창채석: 마른 나무쐐기에 물주기, 마른콩쐐기에 물주기로 팽창시켜 채석하기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거대한 암석의 운반에 있어 ii) 결빙노상운반 혹은 통나무굴대 넣어가면서 옮기기, 이어 큰 돌 세움과 덮음에 있어 iii)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괸 돌 먼저 세우기 iv) 괸 돌 묻은 흙무덤 위로 덮개돌 올려놓기 v) 덮개돌 올려놓은 뒤에 괸 돌 드러내기 작업을 한다. 그러나 스톤헨지와 같은 거석작업엔 제자리 넣기 덧나무 걸기 기법을 사용했다.

2002년 10월 전라남도 화순군 고인돌 축조재현 행사에 9.8톤의 돌을 옮기는데 통나무 굴대 운반방식으로 85명이 동원되었다. 현대인으로 1인당 101.5㎏(0.1015 톤) 정도 움직일 수 있었다. 따라서 고인돌의 무게에 따라 동원인력을 추산할 수 있다. 당시는 동원인력의 2~3배 상주인구와 집마다 4~5명의 가족으로 환산하면 거주민과 세대수를 추계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화장사 앞 칠성바위 가운데 칠성각 앞 가장 큰 암각화 고인돌을 측정한 결과 길이 4.33m, 높이 2.06m, 폭 2.26m이기에 중량을 환산하니 41톤가량으로 추정되었다. 계산식은 4.33m(길이)×2.06m(높이)×2.26m(폭)× 2.6(암석의 비중)× 80%(20% 가량 돌이 떨어져 나갔음) = 41.14톤 이다. 이를 통나무 굴대에다가 볏짚밧줄(稻索) 혹은 칡덩굴밧줄(葛索)로 잡아당겨 이동한다면 적어도 372명(41.14톤 /화순군 실험치 1인당 0.1015톤)이 필요했다. 이를 기반으로 탄성추계하면 지역주민 세대수가 300세대(호) 이상이었으며, 거주했던 주민은 1,500여 명 정도가 살았던 규모가 비교적 큰 농경사회였다.

글 = 권택성<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