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뮤지컬과 같은 듯 다른 매력…안중근 마지막 1년 담은 ‘영웅’
원작 뮤지컬과 같은 듯 다른 매력…안중근 마지막 1년 담은 ‘영웅’
  • 김민주
  • 승인 2022.12.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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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방식·구성·캐릭터 각색
조명 활용 장면·분위기 전환
뮤지컬 라이브 보는 듯 생생
노래 70% 과감한 현장 녹음
얼굴 가까이 잡아 내면 강조
정성화 발성·감정 표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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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절절한 노래가, 가슴 저린 외침이 관객을 울린다. 여태까지 스크린에서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경험이다. 비통한 심정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러닝타임 120분 내내 뜨거운 눈물이 멈추지 않는 영화 ‘영웅’이다.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의사가 하얀 설원에서 정처 없이 걷다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 앉는다.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다.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이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피로 맹세한다. 태극기 속 피로 쓰인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는 글은 그 어떤 열망보다 뜨겁다.

2년 후, 안중근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다. 오랜 동지 우덕순(조재윤), 명사수 조도선(배정남),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박진주)를 만나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한편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적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던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는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한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 후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친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전쟁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이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영웅’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유 독립이 가진 의미를 깊이 새겨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 그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무대에 올린 동명의 뮤지컬 ‘영웅’이 스크린으로 재해석된 작품이다. 한국 영화로는 최초의 행보로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뮤지컬의 영화화가 드디어 한국 작품으로 옮겨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 쌍천만 감독’의 수식어를 단 ‘윤제균’ 감독은 영화 ‘영웅’을 통해 뮤지컬 무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안중근 의사를 그려냈다. 윤 감독은 무대 위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오면서 서사나 표현 방식, 기술적인 면 등에서 영화적인 구성 방식을 고민했으며, 캐릭터 역시 영화에 맞게 이야기를 보강하는 방식을 취했다.

장면전환은 찻잔이 떨리며 과거를 회상하고 앞치마를 펼치면 다음 장면에서 겉옷을 입는 등 자연스러운 컷과 컷의 연결로 해결하며 감독의 노련미가 느껴지는 연출도 잘 녹아들었다.

‘뮤지컬 영화’답게 곳곳에 뮤지컬 특성도 찾아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장면에서 어둡던 배경이 갑자기 밝게 전환되는 장면, 첩보원 설희가 있던 밝은 무도회장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설희가 홀로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는 뮤지컬 공연 무대에서 조명을 활용해 분위기와 장면을 전환하는 기법을 들여온 것이 마치 공연 라이브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더해진 또 다른 장점은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들의 내면과 그들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뮤지컬은 무대 위 배우들의 호흡과 그 순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상황과 감정에 맞는 배우들의 표정을 가깝게 볼 수는 없다. 영화는 넘버(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와 공기로 상상했던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관객들에게 조금 더 인물의 내면에 접근하게 만들었다.

또한 한국 영화 최초로 배우들이 직접 촬영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을 택했다. 무려 영화의 70%를 현장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노래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한껏 담겼다. 뮤지컬이 전문이 아닌 배우들은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호흡과 떨림이 담긴 연기와 맞물려 무대와는 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사실 한국 영화는 뮤지컬 영화의 불모지와 다르지 않았다. ‘김종욱 찾기’, ‘부라더’, ‘스윙키즈’ 등은 뮤지컬을 원작 삼으면서도 극영화로 제작됐다. 관객이 한국 영화 속 배우들이 춤을 추고 노래는 부르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은 최고의 뮤지컬 배우 ‘정성화’를 중심으로 스타급 영화배우들을 조연으로 배치해 관객이 느끼는 어색함과 영화의 약점을 모두 가렸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뮤지컬 ‘영웅’의 초연 당시부터 14년을 안중근 의사로 살아온 정성화는 영화 안에서도 ‘도마 안중근’ 그 자체였다. 정성화 외에 안중근을 연기할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넘버에 대한 이해도, 안중근 의사의 서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상을 준다. 정성화는 무대와 매체의 차이를 이해하고, 디테일한 발성부터 감정의 디벨롭까지 탁월하게 표현한 노력이 러닝 타임 내내 빛이 난다.

무엇보다 ‘영웅’을 완성하는 건 넘버다. 뮤지컬 ‘영웅’의 원작 넘버가 갖는 상징성과 감동은 스크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웅’의 대표 넘버 중 하나인 ‘누가 죄인인가’는 뮤지컬 영화가 주는 힘을 입증한다. 주인공과 앙상블에게서 전해지는 사운드의 상당한 힘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특히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한 나문희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의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이전까지는 눈물을 참아왔던 관객도 이때만큼은 터트릴 수밖에 없다. 나문희는 떨림조차 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소 투박해도,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도 진심은 언제나 관객을 울리는 법이다.

‘영웅’은 지난 2019년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보다 3년가량 늦게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이를 전화위복 삼아 충분한 후반 작업 기간을 바탕으로 높은 퀄리티의 뮤지컬 영화로 완성됐다. 뮤지컬을 봤던 관객들에게는 반갑고, 이 작품이 처음인 관객들도 무리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오늘날 영화 ‘영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건 무엇일까. 우리가 피로 쓰인 역사 위에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역사가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안중근의 유해가 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이 역사가 현재 진행 중이란 걸 깊이 새긴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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