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기록의 쓸모
[달구벌 아침] 기록의 쓸모
  • 승인 2023.03.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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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교사
며칠 전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웰컴홈:개화’ 특별전에 다녀왔다.

이건희 회장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서재에 틀어박혀 책 속에서 답을 찾았다고 한다. 평소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림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곤 했을까?’ 질문하며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감상했다.

작품을 감상하며, 그림은 ‘화가의 기록’이란걸 깨달았다. 그들의 회화 기법, 화풍 등은 곧 책을 쓰는 작가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과 비슷했다. 말이 그 사람의 마음의 향기인 것처럼 글이나 그림에서도 그 사람 특유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기록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나 사관들이 기록한 역사처럼 ‘전해지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암묵지’와 ‘형식지’라는 말이 있다. 맛의 비법을 자식이나 며느리,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본인의 머릿속에만 꽁꽁 가두어둔다면(‘암묵지’) 그 맛집은 대를 이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하여 ‘형식지’로 만든다면 대대로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록은 성취를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보다 글로 쓴 목표가 이루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 시각화함으로써 계속 목표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보면 대부분 비전보드 작성, 100번 쓰기, 확언 쓰고 외치기 등 목표를 시각화한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고 말한다.

찰나의 기록이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은 고속도를 달리는 중 특히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 그때마다 녹음기를 꺼내 녹음했다고 한다. 작가 스티븐 킹은 캐릭터의 생생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써버린다고 한다. 나도 칼럼을 쓰기 시작하고는 번뜩이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이 달아나기 전에 메모로 붙잡아두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은 칼럼의 소재나 살이 된다.

쓰는 것은 감정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글을 통해 긍정 에너지를 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에너지를 내보내기도 한다. 책 <악인론>에서 저자는 “감사일기는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분노일기를 씀으로써 크게 성장했다” 고 이야기한다. 나는 매일 감사일기를 쓰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크게 공감한다. 감사일기와 더불어 내 안에 있는 질투,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함께 쓸 때 나의 진짜 욕망에 귀 기울이고 순수한 내면 자아를 만날 수 있다.

또한 기록은 다른 사람과의 매개체가 되어준다. 오픈된 공간에 기록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게 된다. 내 생각을 표현하거나 내가 얻은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그 기록들이 나를 보증하는 수표가 되고, 오프라인의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온라인은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알리고, 신뢰를 쌓아 나를 퍼스널브랜딩 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수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기록을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점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무슨 감정을 느꼈지? 그 일로부터 무슨 인사이트를 얻었지?’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어떤 기록이든 시작하자.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거나 잠들기 전 세줄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 생활고로 종이가 떨어지자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이중섭 화가처럼, 어떻게든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1.00]365= 1.00

[1.01]365= 37.7

늘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지 않을 핑계가 생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작지만 꾸준히 하는 것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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