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말하지 않는다.
엷은 미소나 활짝 웃음으로
속마음을 감추고
스칠 듯 말 듯
향기를 펼치지만, 꽃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다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날아온 한 마리 나비
꽃의 눈썹 위에 아찔하게
햇살 한 가닥 내려놓고 사라질 때
바람에 잠깐 자신을 맡겨
몸을 흔들 뿐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진흥= 1972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 ‘어디에도 없다’, ‘가혹한 향기’ 외.
<해설> 꽃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 깨달은 사람들의 직관이다. 그러나 시인은 엷은 미소나 활짝 웃음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스칠 듯 말 듯 속마음까지 감추고 향기로 말한다고 쓰고 있다. 시의 도입부에 단정을 앉혀놓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상을 구부린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면서 눈썹을 움직여 나비를 다루는 솜씨는 가히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꽃의 또 다른 세계이다. 김춘수 시인이 살아서 이 시를 읽는다면 아찔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독자들은 이 시가 다루고 있는 꽃을 통해 자신이 처한 다양한 입장과 감정의 교차를 느낄 것이다. 나는 시인이 말하지 않는 꽃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유용한 말을 하고 있는지를 직감한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