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현실과 맞지않는 게 최악의 투자
[데스크 칼럼] 현실과 맞지않는 게 최악의 투자
  • 승인 2023.08.1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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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최연청 부국장
밤 11시가 다 된 읍 소재지 이면도로 스쿨존. 깊은 밤 시골길엔 아예 인적이 없다. 조금 속도를 내도 되련만 차들은 굼벵이 걸음이다. 운전자들은 짜증이 난다. 하지만 차량의 속도를 올려서는 안 된다. 어린이 보호구역이기 때문이다. 최고속도 30Km를 넘겨 주행하는지를 24시간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는 카메라에 당하지 않으려면 엉덩이에 쥐가 나고, 서두르고픈 맘에 애간장이 녹더라도 참아야 한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라도 마찬가지다. 5030이라는 미덕 앞에서 운전자들은 그저 도를 닦는 마음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스쿨존 카메라 앞을 지나가야 한다. 소달구지가 따로 없다. 밤늦은 시간대나 이른 새벽에는 아무리 학교 앞 도로라도 다니는 어린이가 거의 없지만 그런 현실은 아무 상관이 없다. 스쿨존이니까 벌금을 내지 않으려면 무조건 시속 30Km 이하로 가야 한다. 조금의 융통성도 없다. 너무 획일적이란 생각이 들어도 소용은 없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최고 50㎞로 규정된 도심 도로 제한속도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김 대표는 강원도의 한 도로교통공단 현장 간담회에서 “도로 제한속도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살펴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맞다. 맞는 말이다. 보행자의 안전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도심 왕복 8차선 도로의 시속 50Km 제한 속도에 따라 운행하다 보면 마음속에 천불이 날 때도 있다.

지난 2021년 4월 시행된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천차만별인 도로 환경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공론화 과정도 없이 획일적으로 규제를 도입해 비효율적이란 비판이 많은 게 현실이다.

현실과 맞지 않으면 고쳐야 하는 게 정상이다. 제대로 하려면 현장 상황을 확실히 살피고 각계의 의견을 두루 반영해 현실과 맞도록, 무리 없이 진행되도록 뜯어고치고 다듬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보행자 안전을 위한답시고 보행자 통행금지 구간 도로까지 제한 속도를 80Km에서 60Km로 마구잡이 하향 조정한 말도 안되는 이 제도는 이전 정부가 자주 했다는 통계 조작을 기반으로 전면 시행됐다. 인구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아닌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로 교통선진국과 통계를 비교하다가 반론이 커지자 최신 통계치가 아닌 과거 통계치를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선진국보다 많다’며 자료를 왜곡해 정책을 브리핑했다. 전형적인 통계 조작이라는 시각이 많다. 시민 의식이 개선되면서 보행자 사망률까지 교통선진국과 엇비슷해져 굳이 ‘안전속도 5030’이라는 제도 시행이 필요할까 싶은 시점에서 이 제도는 도입됐다.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시간 낭비와 사회적·경제적 비용 증가를 부르는 제도 탓에 과태료를 내는 이만 많아졌다.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강행해 문제가 된 것은 많다. 지난주 끝이 난 세계 잼버리 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새만금 현장이 세계로부터 온 수만 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을 한꺼번에 수용해 행사를 치를 장소가 되지 못한다는 의견은 무시됐다. 이미 확보한 많은 예산으로도 그늘막과 화장실 수도 등 필수 편의시설 조차 제때,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잘못은 세계로부터 거꾸로 지적을 받았다. 결국 기업과 종교계, 문화예술계, 대학 같은 민간이 동원돼 무너진 국격과 떨어진 나라 체면을 조금이나마 일으켜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이맘때 쯤 대구에서 열렸던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 하나가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고 했다.

현실을 무시한 채 강행하는 이런 일들은 늘 최악의 상황을 부르기 마련이다. 영국이, 미국이 야영장에서 자국의 스카우트 대원들을 철수시킨 게 바로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이 세계잼버리 대회 유치라는 큰 투자를 하고서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에는 손을 놓았으니 국격이 추락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투자 이론가이면서 경제사학자인 월리엄 번스타인은 ‘투자의 네 기둥’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투자자들의 가장 큰 위험은 최악에 대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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