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와온에 가거든
[좋은 시를 찾아서] 와온에 가거든
  • 승인 2024.02.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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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양광모 시인 사진
양광모 시인

노을 몇 점 주우러 가는 도로에

촘촘한 간격으로 설치된

수십 개의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상처란 신이 만들어 놓은

생의 과속방지턱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았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야 한다는

느릿느릿 도착한 와온 바다,

엄지손톱만한 해가 수십만 평의

검은 갯벌을 붉게 물들이며

섬 너머로 엉금엉금 지는 모습을 바라보자면

일생을 갯벌 게구멍 속에서 지내도

생은 좋은 일만 같았다

그대여, 와온에 가거든

갯벌 게구멍 속에 느릿느릿 들어앉았다 오라

밀물이 들기까지 생은 종종 멈추어도 좋은 것이다

◇양광모= 경희대 국문과 졸업. 2012년 시인 등단. 열여덟 권의 신작 시집과 여덟 권의 시선집 출간. 24년도 수능필적확인문구로 ‘가장 넓은 길’ 시 인용. 2024년 절필 시집 ‘詩가 너의 눈에 번개를 넣어준 적 없다면’ 출간.

<해설> 진정한 휴식은 일시 멈춤 아니겠는가? 그것도 그곳이 갯벌이라니, 갯벌의 게구멍 이라니, 무언가 원시의 생명이 꿈틀거리는 태조의 상태가 마치 갯벌은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시로 읽힌다. 이 시의 배경 혹은 배후가 되는 장소는 와온인데, 내 기억 속 와온에는 널배를 밀고 가는 원주민들이 있고, 사람의 인기척에 펄의 구멍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망둥어가 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펄에 비친 일몰을 등지고 돌아온 기억이 아직도 나에겐 한 폭의 쓸쓸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시인은 아마도 그런 와온을 “일생을 갯벌 게구멍 속에서 지내도/생은 좋은 일만 같았다”라고, 시적 언술로 드러내면서 “그대여, 와온에 가거든/갯벌 게구멍 속에 느릿느릿 들어앉았다 오라”는 권유를 아끼지 않는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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