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부엌에는 신발 두 켤레
채울 것도 없는 방에
도래판 하나
햅쌀 한 포
가난의 공간엔
풋사과 같은 향이 흐르고
마주보고 웃으며
눈빛으로 얘기하는 신혼살림
▷경남 김해 출생.『문학예술』시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영신케미칼 대표로 부산에서 창작 활동. 정길언의 `신혼살림’을 읽노라면 물신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의 삶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질과 양’에 대한 양비론이 분분하다. 물론 일상생활에는 빈곤보다 물질적 풍요가 우선한다. 그러나 빈곤이란 꼭 비참함을 뜻하지만은 않음을 우리는 `신혼살림’에서 눈여겨 볼 수 있다.
3연 8행의 이 간결한 시 속에는 `채울 것도 없는 방’에 `가난의 공간’이 전부다. 그러나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놓인 신혼살이에는 남몰래 `마주보고 웃으며’ 사는 `풋사과 향이’ 생활을 가득 메우고 있다. 별 것 아닌 것을 별난 시로 일궈내고 있는 시인의 시적 능력이 이채롭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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