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리그 강팀으로…모든 역량 쏟겠다”
“대구를 리그 강팀으로…모든 역량 쏟겠다”
  • 이상환
  • 승인 2013.07.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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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人> 대구FC 백종철 감독

중3때 축구 입문, 현역시절 국가대표로 활약

여자축구 발전에도 큰영향, 고향서 제2축구인생 시작

나만의 특화된 전술로 명문구단 만들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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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철 감독은 “대구FC 선수들 중에서 국가대표를 배출하고, 좋은 경기력을 갖춰 최초의 시민구단으로서 명문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소망을 얘기했다.
프로 스포츠 무대는 냉정하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좋은 결과가 따라야 한다. 올해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은 본격적인 강등제가 시행되면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결과의 책임은 사령탑인 감독에게 돌아간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에 발맞춰 국내 최초의 시민프로축구단으로 출범한 대구FC는 초대 박종환 감독 이후 5번 감독이 교체됐다. 올 시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즌초반 당성증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전격 하차했다. 리그 전반기 13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부진으로 최하위로 추락했다. 구단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2부리그 강등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누구도 쉽사리 이 자리를 맡으려는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달랐다. 지난 4월 말 대구FC 제6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백종철(52) 감독이다. 자신의 축구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 도 있었지만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바꿔서 말하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백 감독은 “올해 대구FC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접하고 있었지만 감독 제의가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제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평소 지역 출신으로 대구FC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울 때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있다”고 밝혔다.

백 감독은 초대 박종환 감독 이후 여러차례 물망에 올라었다. 그러나 이 지역 출신인 점이 되레 감독 선임에 걸림돌이 됐다. 후반기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달 20일 대구스타디움에서 그를 만났다. 빡빡한 일정과 부담감 때문에 다소 지친 모습이었지만 자신감만은 충만했다. 프로 초보 감독으로 자신의 축구인생에 전환점을 맞은 그의 축구에 대한 꿈과 열정, 도전사를 들어봤다.

#1. 열정(passional)

그동안 그는 대구FC 사령탑이 바뀔때 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가장 안좋은 시기에. 쉽사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명쾌하게 결정을 내렸다. 자칫 불명예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흔쾌히 감독 제의를 수락했다. 자신감이 그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대구FC 경기를 빼 놓지 않고 모니터 해 온 터라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지만 대략적으로 선수들을 파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지만 팀을 맡을 용기를 내게됐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팀을 맡고 난 후 속사정을 알고난 후 한숨이 나왔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가 선수들의 체력이었다. 그렇다고 시즌중에 체력훈련만 할 수 있는 입장도 안됐다.

다행히 월드컵 예선탓에 대표팀 소집으로 인한 한달여 간의 리그 휴식기를 맞게되면서 팀을 추스를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 백 감독은 “직접 훈련을 해 보니 체력적인 문제가 심각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좋고, 선수단에는 긍정적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하는 전술과 철학을 선수들이 빠르게 잘 흡수한다. 후반기에는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이 기간동안 백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선 상실감에 빠진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는 한편 평삼심을 심어주기 위해 여가 시간동안 독서를 권했다. 평소 독서광인 그는 시간날때 마다 책을 든다. 하지만 훈련에는 엄격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해 부작용이 있었지만 힘든 훈련을 소화하면서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전반기 성적이 나빠 강등권 탈출이 쉽지는 않은 상황에 대해 백 감독은 “스플릿 라운드 이후에 승부를 볼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마음이다”고 후반기 기대감을 애둘러 표현했다.

지난 4월말 취임 후 벌써 8경기를 치렀다. 2승2무4패의 성적표를 받았다. 이제 두달여 밖에 안된 초보 감독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아니다. 하지만 기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23일 치른 후반기 첫 경기에서 어렵던 시즌 첫 승을 거두면서 팀 분위기를 쇄신해 기대를 갖게 했다. 백 감독은 평소 온화한 미소와는 달리 자신감이 철철 넘쳐 흐른다. 인터뷰를 하는 시간내내 “자신있다”는 표현을 여러차례 했다.

이제 두달밖에 안된 꼴찌 팀 감독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긍금했다. 그는 자신의 축구철학과 열정을 쏟아냈다.

“대구FC는 물론 K리그의 경기력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평소 프리미어리그(영국)와 J(일본)리그를 자주 본다고 했다. 하지만 좋은 점을 배워서 활용하겠지만 자신만의 특화된 전술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늘 ‘패스, 트래핑, 속도, 타이밍’ 등 네 가지를 강조한다. 축구가 모두 이 네가지 안에 다 있다고 했다. 백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가 위기에 빠진 대구FC를 살려낼 특효약이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2. 도전(challenger)

그의 축구 인생은 한마다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백 감독은 지난 4월 말 당성증 감독의 후임으로 대구FC에 부임했다. 백 감독은 “대구FC가 전반기에 1승도 하지 못한 것을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구FC의 부진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상황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전반기 최하위 팀이지만 자신이 할 역할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도전을 즐긴다. 남들이 다 가는 길 보다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 또한 의미가 크다는게 평소 그의 지론이다.

백 감독은 1970년대 초 중학교 3학년 시절 뒤늦게 축구에 입문했다. 클럽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당시 청구중학교 전용남 교사의 눈에 띄어 구미에서 전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재능이 뛰어난 탓에 그는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다. 청구고와 경희대를 나온 그는 곧바로 프로무대로 뛰어 들었다. 현대와 일화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현역시절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는 등 잘나가는 선수였다.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 백 감독은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2년 호남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K리그 일화에서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프로구단 수석코치를 맡은 그가 돌연, 여자축구계로 뛰어 들었다. 고향에서 창단한 영진전문대 여자축구부 감독으로 변신했다. 모두 꺼려하던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선택한 것이다. K리그에서 지도자 수업을 좀 더 쌓은 후 프로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의 길로 들어섰다.

영진전문대를 전국 여자 축구의 최정상으로 올려 놓으면서 U-19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는 등 한국여자축구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소속팀인 영진전문대가 2010년 축구부를 해체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평소 꿈꾸던 K리그로 향했다. 2011년 부산 아이콘스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처음 꿈꿨던 K리그로 복귀했다. 1년여 간 K리그 흐름을 파악한 백 감독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위기에 빠진 고향팀 대구FC에서 손을 내밀었다. 선택은 분명 자신의 몫이지만, 한마디로 모험이었다. 침몰하는 배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합리적이고 강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정평이 나 있는 백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올 시즌 어떤 결말을 맺을 지 주목되는 이유다.

#3. 꿈(dream)

그도 프로감독 모두가 꾸는 꿈을 꾼다. 당연히 우승이다.

백 감독은 자신의 축구인생 중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아 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84∼1985년 당시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활약하며 대표팀을 본선무대에 올려 놓았지만 정작 자신은 부상으로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백 감독은 “세월이 흐른 후 생각해보니 그때가 가장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월드컵은 평생 한번 서 보지도 못한 선수가 더 많은, 축구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만큼 아쉬움이 더 크다고 했다.

고교축구 명문인 청구고 출신인 백 감독은 동기생인 변병주(전 대구FC 감독), 박경훈(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과 황금세대를 이끈 주축이었다. 이미 변병주 전 감독이 대구FC 사령탑을 거쳐 갔고, 박경훈 감독이 일찍 K리그에 뛰어든 것에 비해 다소 뒤늦은 출발이다.

그만큼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백 감독은 “그동안 감독 얘기가 여러차례 있었다. 너무 늦게 온 것 아니냐고 말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지금은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게 중요하다. 대구 지역인이고 어려울 때 돕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지금 대구의 상황을 좋게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선수들과 함께 이 숙제를 해결하고자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현재의 심정을 밝혔다.

그는 대구FC를 기준을 갖춘 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기준은 단순했지만 어려운 과제였다. 그는 “나는 평범한 논리에서 출발한다. 상대에 따라 선수 배치, 포메이션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는 축구를 지향한다. 끌려 다니면 체력 소모도 굉장히 심하고, 공격 횟수도 줄어들어 결국에는 수비에 비중을 두는 축구를 할 수 밖에 없다. 과정이 좋다면 볼 점유율, 득점과 같은 결과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현역시절 스트라이커로 뛰었지만 활발한 위치 교대를 활용한 공격 패턴이 현대 축구의 흐름인 만큼 공격수가 일정 지역에서 머무르면서 골만 노리는 건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는 올시즌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백 감독은 “현 시점에서 목표를 말하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대구FC가 리그를 주도하는 팀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또 대구FC 선수들 중에서 국가대표를 배출하고, 좋은 경기력을 갖춰 최초의 시민구단으로서 명문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소망을 얘기했다.

백종철 감독이 꾸고 있는 꿈이 어떻게 펼쳐져 나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상환기자 lees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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