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역사 잊지 않겠습니다”
“아픔의 역사 잊지 않겠습니다”
  • 김지홍
  • 승인 2014.08.3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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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역사관’ 건립 첫 삽

대구 중구서 터잡기 행사

12월 세계인권의 날 완공
/news/photo/first/201408/img_140690_1.jpg"위안부역사관터잡기/news/photo/first/201408/img_140690_1.jpg"
30일 오전 대구 중구 위안부 역사관 공사 현장에서 ‘터잡기’ 행사가 열린 가운데 이용수·이수산 할머니와 안이정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등이 역사관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 대구 중구청 제공
“이 역사관이 만들어지면 대대손손 우리 후손들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겠지요.”

30일 오전 대구 중구 위안부 역사관이 세워질 공사 현장에서 지팡이를 짚고 이수산(87) 할머니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누군가가 의자를 준비하려하자 할머니는 “서도 괜찮다”며 거절했다. 할머니는 “역사관을 짓는데 바쁜 와중에도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여러분들 덕분에 짓게 됐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어디 비할 때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주최한 대구 위안부 역사관 터잡기 행사에는 안이정선 시민모임 대표와 윤순영 중구청장, 정순천 대구시의회 부의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수산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할머니는 “나는 운이 좋게도 어떻게 살아돌아와 지금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기쁨에 넘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울먹였다. 이 할머니는 15살 때 중국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광복 후에도 중국에서 지내다 몇 해전에 다시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할머니와 같은 또래가 갇혀있었던 두 집 중에 한 집이 불에 타면서,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수십명이 그대로 숨졌다. 할머니는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역사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6) 할머니도 이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왔다. 이 할머니는 “순수하게 시민들이 모금하면서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다”며 “대사관 앞에서 누구보다 뛰고 다니면서 많이 울었다. 하루빨리 공식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15살되던 해 대만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가 광복 후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날 공사가 시작된 위안부 역사관은 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완공될 예정이다. 건물을 짓는 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과 피해자 할머니들의 유산·기부금, 희움(희망을 모아 꽃 피움)상품 수익금, 여성가족부와 대구 중구청의 지원 등으로 9억5천만원이 모였다. 하지만 아직 3억원이 부족한 상태다. 여성가족부에는 대구와 경북에 모두 26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등록돼 있지만, 현재 대구 5명, 경북 2명이 생존해있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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