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김영란법’
언론과 ‘김영란법’
  • 승인 2015.03.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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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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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 주필
여민 컴 대표
“공무원들에게 봉투 찔러 주는 게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제가 기억하기론 5·16 이후 생겨난 풍습이에요.”

“이전에는 어떻게 접대 했나요?”

“요정 등 술집에서 향응을 제공하고 기생아가씨 붙여 수청 들게 하면 접대 가 끝났어요. 그런데 군인들이 집권한 뒤에는 술과 여자에다 돈봉투를 추 가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20여 년 전, 보리수염이 당시 경북도의회 의장이던 분과 나눈 대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분은 오랫동안 경주에서 사업체를 경영해 공무원 접대의 산증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업체 경영자는 ‘을(乙)’이고, 공무원은 ‘갑(甲)’이다. 이런 ‘을’의 증언이니 위의 대화내용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5·16 이후부터 시작된 공직자의 금품수수 관행은 우리 사회를 편법과 반칙 , 특권 카르텔이 횡행하는 병든 사회로 만들었다. 그 병폐는 ‘관피아’로 나타나 국민들을 절망케 했다. 이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2년 8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을 제안했다. 이어 2013년 8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의원들은 자신들에게도 족쇄가 될 이 법을 외면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관피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여론에 등 떠밀려 입법에 나섰다. 이어 지난 3월3일 ‘김영란법’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어 이제 공포와 시행만 남겨뒀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부실 입법 시비와 더불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됐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한국기자협회 등이 당사자로 참가하고 변협이 대리하는 형태로 작성된 헌법소원 청구서를 5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청구서에는 법 적용대상에 언론사를 포함시킨 김영란법 제2조가 헌법 제 21조 2항(언론의 자유)과 헌법 제11조(평등권)를 침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공직자의 범위에 그 성격이 전혀 다르며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야 할 언론을 포함시켜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신문협회도 권력이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을 표적 수사하는 등 악용할 경우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며 거들고 나섰다.

이 법을 처음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기자회견을 통해 “사익 추구를 금지하기 위해 만든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국회통과 법안에서 빠지면서 반쪽 법안이 됐다”면서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헌 시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이 법의 적용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위헌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 근거로 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69.8%라는 여론조사를 들었다. 그러나 법리적 결함을 찬성 여론으로 덮을 수는 없다. 비례원칙은 기본권 제한에 국가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한계를 일컫는 헌법상의 원칙이다. 따라서 그 위반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법정(法定) 요건에 따라 엄격히 심사해야 할 사항이라는 게 다수 법률전문가들의 견해다.

어쨌든 ‘김영란법’에 언론이 포함된 것만으로도 한국 언론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가 ‘김영란법’을 심의했던 시기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 대처에 무능했던 정부와 더불어 언론도 질타를 받았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도하지 못한 기자들을 향해 국민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비난할 정도로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다.

누군가 법원과 검찰, 교육기관, 언론만이라도 제 역할을 한다면 한국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수염도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은 가진 자, 힘센 자의 편, 교육은 줄 세우기 무한경쟁 교육, 언론은 정론 대신 편 가르기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따라서 보리수염은 언론을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킨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를 자처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언론자유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검찰공화국’이나 ‘경찰국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검찰 권력을 제어할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 검찰 통제를 위한 장치로 검찰 수사권 폐지,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 설치, 검찰과 경찰 수장의 주민 직선제 도입 등이 제기된 상태다. 모두가 표적 수사나 제 식구 감싸기 수사, 정치권력의 주문 수사 등 과잉·불법수사에 대한 통제·감시를 위한 제도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개념의 불명확성, 불고지죄 등을 내세운 위헌성 시비와 더불어 공직자 외에 적용대상의 지나친 확대로 인한 과잉입법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법리적 문제가 확인된다면 고치면 될 일이다. 이 법 시행으로 한국사회가 부정부패 없는 공정사회로 큰 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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