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칼럼>국가 중대사는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대기자 칼럼>국가 중대사는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 승인 2009.09.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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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정부에서 결정한 일이 꼭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수많은 인재들이 머리를 싸매고 이리 재고 저리 재서 결정한 일이겠지만 시행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불합리한 문제점이 발생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이러다보면 예산낭비도 생기고, 지역끼리의 갈등도 발생한다. 이런 경우를 미리 생각하여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는 것이 행정을 잘하는 정부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일시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내놓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강행하려고 할 때 반대의 목소리가 커진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세종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충청도 표를 얻어야 당선이 가능하다는 참모들의 진언을 받고 그는 “내가 당선하면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하겠다.”는 대선후보로서의 공약을 내걸었다.

이는 전임자인 김대중이 대선후보로 나와 이회창과 다툴 때 충청도의 맹주로 알려진 김종필과 합작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내각책임제를 약속받은 김종필이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김대중 손을 들어준 것은 그 약속이 지켜지리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어차피 자기는 나와 봐야 낙방거사가 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고, 출마를 하지 않는 명분을 찾다보니 내각책임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박정희 밑에서 한번 했던 국무총리 자리가 더 탐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기리라고 생각했던 이회창이 지고 김대중 시대가 당도했다. 이 미묘한 지역감정의 정치방정식을 눈여겨뒀던 노무현은 두 번째 판에서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회창의 허를 찔렀다. 그것이 수도이전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를 이전한다는 것은 국가 중대사다. 대선후보가 표를 얻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내세워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을 무릅쓰고 공약은 내걸렸고 이회창은 어디에서 날아온 총탄인지도 모르고 쓰러졌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결과였지만 이회창이 충청도 출신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표가 몰릴 줄 알았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 아니겠는가. 이에 대해서 당시 한나라당이 크게 위기를 느꼈다면 죽기 살기로 대책을 강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태평무사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울시장 이명박과 경기도지사 김문수 등만 수도이전 반대를 부르짖었다.

시민단체 몇 군데에서도 정식으로 수도이전반대 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으며 지금도 그 명칭은 그대로 남아있다. 노무현의 당선 후 수도이전이 본격화되자 이들에 의해서 위헌청구소송이 제기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소송을 받아들여 위헌으로 판결했고 이로서 수도이전 문제는 끝나야 했다. 노무현은 자기의 공약을 관철시키고자 끝까지 노력했는데 법에서 허용하지 않아서 못했다는 좋은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기가 발동한 것일까.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들고 싶어서일까. 이번에는 행정복합도시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헌재도 위헌이 아니라고 노무현의 손을 들었다. 어정쩡한 한나라당도 `수도이전’이 아니라는 단어 하나 바꾼 것에 슬그머니 찬성으로 돌아섰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장삼이사(張三李四)다. 국가의 중대사를 말 바꿈으로 속여먹는 엉터리 정책이 국민은 안중에 두지 않고 몰상식하게 진행되었다. 소위 `행복도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과천정부청사에 있는 대부분의 부처가 모두 이 행복도시로 이전해야 된다는 점이다.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대법원만 서울에 있지 국무총리를 비롯한 많은 부처가 충청도로 가면 사실상 수도는 충청도로 옮긴 셈이 된다. 최고 결정권자는 서울에 있다고 하지만 과천일대는 공동화(空洞化) 될 게 뻔하고 국회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버릴 수 없으니 모든 부처들이 서울에 사무소를 따로 둬야 하는 이중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

행복도시가 세종시로 이름이 결정되었다고 하지만 행정사무의 비효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충청도 출신이면서도 오죽하면 원안(原案) 수정을 얘기했겠는가. 청문회에서 충청출신의원들에게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소신을 피력한 것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여 잘 한일이다. 그에 비하면 한나라당에 있을 때에는 수도이전을 반대하던 이회창이 자유선진당으로 충청민심을 겨냥하면서부터 찬성으로 돌아선 것과 대비된다.

때마침 국가의 원로 지식인 1200여명이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시 반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은 그들의 경륜으로 볼 때 진심으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해서다. 그들이 조목조목 사실상의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논리는 국민들로서는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 과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도를 이전하려는 모략을 꾸몄던 묘청이 뜻대로 안 되자 반란을 일으킨 일도 있다.

지금 같은 대명천지에 한 사람의 고집과 오기로 일이 여기까지 이른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다만 더 늦기 전에 이처럼 중대한 국사(國事)는 국회에서 결정할 게 아니라 `국민투표’에 부쳐져야 한다고 본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결정만이 참다운 결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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