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으로 표현해 낸 동양 정신의 정수
숯으로 표현해 낸 동양 정신의 정수
  • 황인옥
  • 승인 2016.06.2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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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배 초대展

8월 6일까지 우손갤러리

‘숯’이 가지는 상징성

아크릴 등 소재와 통합

현대적 조형감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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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배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우손갤러리에서 이배와 그의 30년 지기인 앙리 프랑스와 드바이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명래 제공
나무의 본성을 가진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린다. 척박한 땅 위에서 싹을 틔우고 가지와 줄기와 잎을 키워낸다. 운 나쁘면 미처 피워보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천운이면 천년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삶을 다하면 땅으로 돌아가거나 누군가의 따뜻한 삶을 위해 기꺼이 온 몸을 희생하며 최후를 맞는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생명의 씨앗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숯에는 그 모든 일생이 유전자 지도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작가 이배 예술의 주재료는 숯이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숯이 가지는 삶과 죽음, 순환과 나눔에서 오는 관념성이 바탕에 깔린다. 숯의 유전자 지도 위에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이 더해지는 것. 숯의 물성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하는 순간 작품 속 철학적 관념은 그물망처럼 견고해진다. “사람의 감정은 외부로부터 온다. 미술은 이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둘의 관계가 예술적 행위다. 버려지고 끝나고 소멸된 것이 예술이라는 새로운 감성을 만났을 때 새로운 이미지가 생기고 역동적이 된다.”

화가 이배 초대전인 ‘전환(transition)’전이 우손갤러리에서 한창이다. 이번 전시에는 전작부터 최신작까지 다양하게 걸었다. 특히 작가의 30년 지기인 미술평론가이자 프랑스 이까르 문화행정예술대학 교수인 앙리 프랑스와 드바이유가 함께 해 우정을 과시했다.

최근 전시 개막식에 함께 한 앙리 프랑스와 드바이유는 “이배 작가는 감성이 깊고 예민하면서 재료를 잘 다룬다. 특히 숯이 가진 시간성을 공간에 구현하는 시·공간적 통섭이 매력적인 예술가”라며 오랜 친구인 이배 작가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 이배는 1956년생으로 1990년 도불 이후 30년 가까이 프랑스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숯을 재료로 드로잉, 캔버스, 설치 작업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펼쳐왔다. 숯을 캔버스에 집적하기도 하고, 설치작품으로 걸기도 하고, 아크릴 판 위에 병치하기도 하며 다양하게 구현해왔다. 언뜻 보면 단색화 같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은 단색화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나는 단색화에서 보면 신세대 작가다. 그렇더라도 단색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된다.”

숯은 작가 이배가 도불 후 서양에서 찾은 동양의 정체성이다. 다이아몬드를 깎으면 더 강해지듯 그는 숯에서 자연의 역동성을 재발견했다. “사군자의 정신을 담아내는 먹은 소나무나 식물의 씨앗을 태운 그을음에서 왔다. 숯의 본질은 단지 물성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고도의 인격, 불굴의 정신성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내게 있어 숯은 동양 정신의 정수다.”

이배는 숯의 집적으로만 작품을 완성하거나 숯과 아크릴의 조합으로 독특함 미감을 드러내왔다. 특히 아크릴과 숯의 조우에는 다양한 조형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조형성은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문자 이전의 문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특정 대상물이라기보다 내 신체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예술가는 어디서 나서 무엇을 먹고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 모든 신체의 기억이 예술로 승화된다. 두뇌보다 신체의 기억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내 예술 또한 내 몸의 기억들의 현현이다.”

숯이 가지는 역사성과 작가 자신의 신체적 기억의 만남으로 대변되는 그의 작품은 숯을 통해 동양적 미감을 드러내고 작가의 내재된 신체의 기억을 현대적인 조형감으로 아우른 결과다. 신체의 기억을 꺼집어 내는 과정은 숯의 물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는 이 과정을 “지난한 수행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 안에 내재된 것을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드로잉을 한다. 그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화면에 옮긴다. 신체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리듬감 있고 견고한 추상성이 나온다.”

작가는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며 진화를 거듭한다고 믿는 이배의 전시는 8월 6일까지다. 053-427-773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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