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의 허울
무상의료의 허울
  • 승인 2018.10.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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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대구시의사회공보이사)




얼마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고교 무상교육 도입을 예고하면서 교육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의료계에서도 무상의료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문재인 케어를 놓고 정부와 의사들 간에 많은 이견이 오가고 있는 중 무상의료를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일요일 다사에서 대구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가 있었다. 대구시 의사회원들이 진료를 행하였으며 의사회에서는 평소에도 노숙자등 취약계층과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무료 진료 및 상담을 하고 있다. 무료진료이다 보니 병원을 찾기 힘든 외국인근로자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부담 없이 방문하여 평소 궁금하였던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하거나 진료를 받곤 하였다.

이날 본인의 전문과목인 이비인후과에 내원한 환자들의 주된 내원 목적은 귀지가 많은지 확인하고 싶다, 귀를 파니 아프다, 큰 소리를 내면 목이 아프다 등의 경한 증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료 진료이다 보니 경미한 상태이거나 이상이 없음에도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복기해보니 무상 진료시 벌어질 미래를 겪어본 듯하였다. 현 의료제도 하에서 무상의료가 실현되면 국민들은 부담 없이 병원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조금이나마 환자 본인 부담금이 있는 현 의료제도 하에서는 내원하지 않을 사소한 증상임에도 병원을 방문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병원 내원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보니 필연적으로 진료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의사의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질환의 중증정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어 정말 응급진료가 필요한 사람이 신속한 진료와 검사를 받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재원고갈이다. 무상진료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문재인 케어가 실시되면 당장은 본인부담금이 줄어드니 환자의 부담도 줄고 필연적으로 내원환자수가 증가할 것이니 병원도 수익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축적된 건강보험금의 급속한 고갈을 불러일으켜 종국에는 건강보험료의 인상을 불러 오거나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 낼 수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무상진료의 일환으로 6세미만 아동의 입원진료비 본인부담금을 0%로 전액 면제하자 입원율이 1년만에 40%나 증가하였다. 이 정책은 도덕적 해이와 재정낭비 때문에 2년만에 폐지되었다. 문재인 케어시 재정을 감당하지 못해 정부에서는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를 실시하려 할 것이고 이는 의료인의 근로환경을 악화시켜 종국에는 의료의 질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무상진료를 선언했다가 지금은 진료는커녕 간단한 감기약도 구하기 힘든 베네수엘라 같은 남미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선진국인 영국의 공공 국가보건서비스(NHS)를 살펴보면 무상진료는 많은 허점과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1948년 ‘무상의료’를 도입한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진료와 수술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으나 장기간의 대기시간과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낮은 의료서비스 수준, 그리고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환자와 의사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복지로 유명한 스웨덴도 마찬가지이다. 스웨덴의 경우 의료비로 1년에 약 15만원만 지불하면 되니 무상의료에 가까운 수준이다. 스웨덴에서는 의료기관 이용에 있어 슬로건으로 ‘0-7-90-90’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응급사항에는 즉시, 일반의 진료는 7일, 전문의 진료는 90일, 수술 등의 치료는 90일 이내에 가능하게 하겠다는 뜻이며 더욱이 스웨덴에서는 환자가 진료 받을 의사를 선택할 수도 없다. 한국에서는 몇 천원만 지불하면 언제 어디서나 바로 모든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점과 상반된다.

대학병원 진료 대기에 90일은 커녕 1주일만 소요 되도 대기시간이 길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단순 경증에도 수시로 대학병원을 드나드는 한국 의료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부는 단지 정치적 인기에 영합하여 포퓰리즘식의 문재인 케어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 의료에 있어 백년대계가 아닌 단기간의 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세우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되돌아간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장기간의 대기시간을 감내하더라도 무상 의료를 선택할지 환자 본인이 일부 부담하더라도 신속한 진료와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받을지는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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